콩과 보리를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OO이라고 한다

      2024.05.04 06:00   수정 : 2024.05.04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어느 한 마을에는 어리석은 사내가 살았다. 어느 날 사내의 어머니는 시장에 가서 “콩을 구해오거라.”라고 했다.

그러나 사내는 콩이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딴 곡물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콩을 보여주면서 “그럼 이렇게 생긴 것을 구해오거나.”라고 했다.


사내가 시장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곡물 주머니에는 보리가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보리도 필요했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

며칠 후 어머니는 다시 사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이제는 시장에 가서 보리를 구해오라고 하면서 보리를 보여줬다. 그런데 사내가 시장에서 구해 온 것은 다름아닌 콩이었다.

어머니는 화가 단단히 났다. 그래서 “너는 어찌 콩과 보리를 구별도 못하느냐?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콩과 보리는 구별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면서 꾸짖었다.

그때 잠시 출타를 했던 사내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듣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사내의 아버지는 글공부를 많이 한 선비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마루에 불러다 놓고, 콩을 의미하는 숙(菽) 자 옆에 콩을 놓고, 보리는 의미하는 맥(麥) 자 옆에 보리를 놓고서는 서로 비교하면서 가르쳤다.

사내는 숙자와 맥자를 읽고 쓰는 것이 힘들었다. 사실 눈으로 봐서도 이 둘을 서로 구별을 못하는데, 글씨는 더욱 힘든 것이 당연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어찌 숙맥(菽麥)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화를 냈다. 아버지가 “숙맥”이라고 하면 아들도 “쑥맥”하고 따라했다.

마당 울타리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동네 아이들은 그날 이후부터 사내에게 쑥맥! 쑥맥! 하고 놀렸다. “누구는 쑥맥이래요.” “누구는 쑥맥같데요.” 사실 동네 아이들은 쑥맥이 그냥 바보 멍청이에게 하는 욕인 줄만 알았다.

아이들이 어느 날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는데, 한 아이가 글을 잘 읽는 못하는 아이이게 “너도 쑥맥이구나.”하고 놀렸다. 그랬더니 훈장 선생님이 쑥맥이라고 놀린 아이에게 “너는 숙맥이 무슨 뜻인 줄 아느냐?”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쑥맥은 바보라는 뜻이 아닙니까?”라고 했다.

훈장은 아이들을 모아 놓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줬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왕인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단다. 주자가 당시 왕이 된 나이가 고작 14세이었는데, 주자에는 형이 한 명 있었지. 그런데 형님은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은 데가 있었단다. 주자는 형을 두고 자신이 왕에 오른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했지. 신하들은 주자 왕에게 ‘형님은 숙맥(菽麥)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왕으로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의 지혜롭지 못함을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사옵니다. 괘념치 마시옵서서.’라고 했지. 신하들의 말 그대로 주자의 형은 지혜롭지 못하고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졌단다. 실제 형은 콩인 숙(菽)과 보리인 맥(麥)을 구별하지 못했어. 그래서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에게 ‘숙맥’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지금 ‘쑥맥’이라고 놀리는 그 말은 숙맥(菽麥)이란 한자어인 것이다.”라고 했다.

서당의 학동들은 흥미롭다는 듯이 훈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글공부를 많이 한 한 아이가 “훈장님, 논어에 보면 어떤 노인이 자로에게 ‘오곡(五穀)도 분별하지 못한다’고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도 같은 의미입니까?”하고 물었다.

훈장은 ‘기특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가 말한 것은 논어의 미자편에 나온다. 이 내용을 모르는 녀석들이 있으니 자세하게 설명해 주마. 옛날,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스승인 공자와 함께 시골길을 걷다가 처져서 공자를 놓쳤단다. 자로가 이리저리 스승을 찾아다녔는데, 그때 우연히 길가에서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노인을 만났지. 노인은 땅바닥에 쏟아져 있는 곡물을 서로 다른 작은 주머니에 구분해서 담고 있었어.

자로는 노인에게 다가가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겁니까? 제가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었어. 노인은 ‘내 삼태기 안에 들어있던 오곡 주머니가 쏟아져서 곡물들이 서로 섞여 있어서 구분해서 다시 나눠담고 있네.’라고 했지. 그러나 자로는 오곡을 구분할 수 없어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단다. 노인은 이런 자로가 한심해 보였어. 자로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노인에게 ‘어르신 혹시 제 스승님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단다. 그러자 노인은 자로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자네는 팔다리를 움직이는 일은 한번 해 본 것 같지도 않고, 게다가 오곡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자네의 스승이 누구라는 말인가?’하고 핀잔을 주고 나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단다.”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훈장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더니 학동들에게 물었다. “노인이 자로에게 한 말은 어떤 뜻일 것 같으냐?”
그러자 논어를 많이 읽은 학동이 “노인이 말한 ‘오곡(五穀)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은 바로 ‘숙맥(菽麥)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 말과 같은 뜻인 것 같사옵니다. 그래서 노인은 자로가 농사를 짓지 않고 글공부를 한답시고 스승만 따라다니면서 떠도는 것을 책망한 말이옵니다. 즉, 자로에게 어리석다고 꾸짖는 것과 같사옵니다.”라고 했다. 훈장은 학동의 말을 듣고서는 흐뭇해했다.

옛날에는 곡식이 무척 중요했다. 특히나 먹을 수 있는 곡식과 그 이름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곡식에는 오곡과 팔곡이 있었는데, 오곡(五穀)은 도(稻, 벼), 서(黍, 기장), 직(稷, 피), 맥(麥, 보리), 숙(菽, 콩)이고, 여기에 량(梁, 수수), 화(禾, 조), 마(麻, 깨)를 추가해서 팔곡(八穀)이라고 한다.

쌀을 의미하는 미(米)는 벼를 의미하는 도(稻)에 속했다. 보통 식물 자체로는 도(稻, 벼)라고 하고, 추수를 해서 먹는 쌀 형태를 미(米)라고 했다. 그리고 조를 의미하는 자로는 속(粟)도 있었다. 콩을 의미하는 숙(菽)은 다른 말고 두(豆)나 태(太)라고도 했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은 곡물의 이름을 자세하게 알 수가 없었다. 지역에 따라서 나는 곡물이 달랐고 이름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콩과 보리를 구분하는 것은 가장 쉬웠다. 콩과 보리는 오곡에 속하기도 하면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났기 때문이다. 쌀이 나지 않는 곳이라도 콩과 보리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정말 어리석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쑥맥은 숙맥에서 비롯된 말이다. 숙맥(菽麥)은 콩[숙(菽)]과 보리[맥(麥)]로 불변숙맥(不辨菽麥)의 준말이다. 불변숙맥은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을 ‘숙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제목의 ○○은 ‘숙맥(菽麥)’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학입문 식치문>〇 按五榖, 稻黍稷麥菽, 早米晩米 糯米皆稻也. 舊說, 獨以糯爲稻, 則誤也. 陶隱居云詩, 黍稷稻梁禾麻菽麥, 八穀也. 俗人莫能證辨, 而况芝英乎. (생각하건대 오곡은 도, 서, 직, 맥, 숙이다. 조미, 만미, 나미는 모두 벼인데도, 옛날에는 나만을 도라고 했으니, 이것은 틀린 말이다. 도은거는 다음처럼 말했다. 시경에서 서, 직, 도, 량, 화, 마, 숙, 맥을 팔곡이라고 했지만, 속인들은 구별하지 못하거늘 더욱이 영지를 감별할 수 있겠는가?)
<춘추좌씨전>十八年, 春, 王正月, 庚申, 晉欒書, 中行偃, 使程滑弒厲公, 葬之于翼東門之外, 以車一乘, 使荀罃, 士魴, 逆周子于京師而立之, 生十四年矣, 大夫逆于清原, 周子曰, 孤始願不及此, 雖及此, 豈非天乎, 抑人之求君, 使出命也, 立而不從將安用君, 二三子用我今日, 否亦今日, 共而從君, 神之所福也. 對曰: 群臣之願也, 敢不唯命是聽, 庚午, 盟而入, 館于伯子同氏辛巳, 朝于武宮, 逐不臣者七人. 周子有兄而無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18년 봄 주왕 정월 경신일에 진의 난서와 중행언은 정환으로 하여금 진여공을 죽이게 하고, 익읍의 동문 밖에 매장하였는데, 장거 일승만을 사용하였다. 순앵과 사방을 경사에 보내어 주자를 맞아 그를 임금으로 세웠는데, 나이 열넷이었다. 대부들이 청원에서 맞이하니 주자가 말하기를 “나는 처음에 임금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비록 이렇게 되었으나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소. 또한 사람들이 임금을 구하는 것을 명을 내게 함인데, 세워놓고 따르지 않는다면 장차 임금을 어디에 쓰겠소. 그대들이 나를 필요로 함도 오늘이오, 그렇지 않은 것도 오늘이오. 공손히 임금을 따른다면 신이 복을 내릴 것이오.”라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뭇 신하들의 바람이니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다.”라 하였다. 경오일에 맹약하고 국도로 들어가 대부 백자동씨의 집에 머물렀다. 신사일에 무궁에 조현하고 신하답지 않은 사람 일곱을 축출하였다.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으나 지혜롭지 못하여 콩과 보리를 분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임금으로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논어>微子篇. ○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為夫子?” 植其杖而芸. (미자편. ○ 자로가 뒤따르다가 처져 지팡이로 삼태기를 걸쳐 메고 있는 장인을 만났다. 자로가 물었다. “어르신, 혹시 제 스승님을 못 보셨습니까? 장인이 말하길, “사지를 움직여 부지런히 일하지도 않고 오곡도 분별하지 못하는데, 누가 자네의 스승인가?”하고, 지팡이를 땅에 꽂고 김을 매었다.)
○ 集註. 丈人, 亦隱者. 蓧, 竹器. 分, 辨也. 五穀不分, 猶言不辨菽麥爾, 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집주. 노인 역시 은자다.
조는 대나무 그릇이다. 분은 분별이다.
오곡도 분별하지 못한다고 함은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으니 농사를 짓지 않고 스승을 따라 멀리 떠돈다고 자로를 책망한 것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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