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면
2024.04.30 19:46
수정 : 2024.04.30 19:46기사원문
첫째, 우수한 인재가 연구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큰 고민 중 하나는 인재가 직업적인 안정성이나 고수익을 보장하는 분야로 급격하게 몰리고 있어서 우수한 학문후속세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기초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응용학문 분야 중에도 대학원의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곳이 많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구환경과 연구자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수한 인재가 의대 대신 공대를, 경영학 대신 인문학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대학에 대한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10여년째 등록금이 동결됨으로써 더욱 열악해진 대학의 재정으로는 해외 유수 대학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으로 초등학생 1명에 대한 투자보다 낮다. 한때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싱가포르 국립대학교가 국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기반으로 순위가 꾸준히 상승하더니, 드디어 올해 QS 세계대학평가에서 8위에 올랐다.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내 대학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해외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대학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학문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쫓아가던 시절에는 경제적인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 선진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구에서도 세계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여러 분야가 다양성을 기반으로 건강한 학문생태계를 이루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기초학문 분야가 국제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융성하게 할 응용학문의 발달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연구비 지원에서 소외된 기초학문 분야들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서 학문의 다양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정부는 대학에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는 말아야 한다. 정부가 재정지원을 구실로 대학 운영의 구체적인 부분에까지 개입하게 되면 대학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근 여러 대학이 교육부가 제시한 무전공 모집 정책을 기화로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대학의 핵심 기능인 연구 기능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이처럼 정부가 대학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대학의 교육철학을 변질시키고 대학의 발전에 족쇄를 채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대학에 재정적·제도적 지원은 아끼지 않고 간섭은 자제해야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 대학들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국가는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갖춰서 세계 유수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학은 우수한 교육과 연구 성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발전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퇴행적인 틀을 깨는 혁신이 필요하다.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학장 독어독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