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김지유가 소개하는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2024.05.02 13:10   수정 : 2024.05.02 13:10기사원문

"우리가 분열하는 이유는 생각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 차이를 깨닫고, 받아들이고, 축하하지 못하는 무능함 때문이다."(미국 시인 오드리 로드)

감정이라는 것은 피곤하다. 무언가가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감정은 짜증 섞인 한숨을 쉬게 하고, 어쩔 땐 저 자신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걸스 캔 두 애니씽(Girls can do anything)’이라지만, 여자들이 피곤하게 구는 것 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배웠다.


바비 인형처럼 밝고 긍정적으로 살면 주변 사람도 편안해지고, 물론 자신한테도 좋은 일이란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나오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말이 이 상황에 딱 맞는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듯싶다.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 매거진 ‘슈피겔’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SNS 팔로워 60만명을 보유한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의 저자 타라-루이제 비트베어는 기존에 여성에게 씌워진 일방적 프레임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다.

강경한 그녀의 태도와 거침없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인플루언서로 거듭난 이유를 묻는다면 단연 ‘돌직구’라고 설명하고 싶다. 과격한 그녀의 언행이 전 세계인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이유에는 꾸밈없이 전하는 진솔한 삶의 고충과 공감이 있었다.

지난 2021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내뱉은 “나는 페미니스트” 발언은 독일 사회를 뒤흔들었다. 무려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최장기 독일 총리를 역임하며 여성의 롤모델로 여겨졌음에도 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4년 연속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될 만큼 훌륭한 인물도 여성이 가진 지위적 한계에 대한 문제를 직시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이주민의 유입이 많은 이민 국가인 독일 사회는 다문화 환경 속에서 여성은 부당한 상황에 부닥치는 일이 당연시됐다.

이런 시기 등장한 90년생 여성의 당당한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금세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의 지지를 한 몸에 받게 됐다. 책에 대한 반응은 국내에서도 뜨겁다. 물론 독일 현지의 상황과 한국의 현재를 동일 선상에 올려두고 논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한계를 초월해 여성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의 요인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은 독자를 통해 증명됐다.

기억에 남는 리뷰는 “가끔 작가가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작가가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혐오’가 아닌 ‘공존’이다”라는 말이었다. 타라는 여성들에게 “언제나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더 많이 행동하고, 더 많이 질문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호르몬에 휘둘리거나 통제력이 없고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당사자가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나가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다.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에서 소개하는 여성이란 ‘모든’ 여성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성별과 심리적인 성별이 동일한 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여성을 비롯해 자신을 여성으로 규정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성 정체성과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회가 발전하며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여성 혐오’에 맞서 차별을 극복하고 평등을 향해가는 행렬에 동참하길 권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스타그램 필터와 핑크색 면도기로 가득하며, 같은 여성조차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고,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으며, 그렇다고 해도 괜찮은 여성이다.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냥 여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그 어떤 서랍도 나를 가둘 순 없다.

일상에 넘쳐나는 은근한 차별이 피로했다면 이제 당신이 이 책을 만날 차례다.
여자라면 저절로 끄덕여지는 경험담과 유머로 되받아치는 무용담을 깔깔거리며 읽다 보면, 차별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세상에 태클 한번 걸어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김지유 번역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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