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PA간호사 제도화'...사법적 잣대는 여전히 범죄자 취급
2024.05.03 14:21
수정 : 2024.05.05 13:2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전공의 집단 이탈로 빚어진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진료지원 간호사(PA, Physician Asistant)의 제도화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 법적인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단에 유의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 관련 3개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수정안에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간호사의 업무는 현행 의료법에 적시된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되, PA 간호사 법제화를 위한 규정이 마련됐다. PA 간호사를 포함한 전문간호사의 경우 자격을 인정받은 분야에서 의사의 포괄적 지도나 위임 하에 진료 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수정된 간호법이 제정되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의료행위를 지원·보조해왔던 PA 간호사가 제도권 안으로 편입될 전망이다.
PA, 의료현장에선 여전히 잠재적 범죄자 취급
문제는 전국 대다수 의료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PA 간호사들의 수술 및 진료 보조 행위까지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현재의 상황이다. 자칫 간호사나 의사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안의 경중과 무면허 의료 행위의 건수, 의사의 개입 여부 등에 따라 법 위반 적용 기준을 엄격히 구분하고 경찰 및 검찰의 내부 기준을 수립하는 게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PA 간호사는 '전담간호사' '의료보조인력' 등으로 불리며 통상적으로 △수술 보조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보조 등의 의료행위를 하는 간호사를 뜻한다. 현재 전국 병원에서 약 1만명 가량의 PA 간호사가 활동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 추산이다.
정부, 시범사업 통해 PA간호사 제도화 추진
정부는 전공의 사직으로 병원 내 일손이 부족해지자 PA 간호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지난 2월 27일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보건의료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필요하면 시범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는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근거, PA 간호사들이 실질적으로 의사 업무를 일부 대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에서 그동안 대법원 판례를 통해 간호사에게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사망진단,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 마취 등)를 제외하고, PA 간호사가 검사와 치료·처치, 수술, 마취, 중환자 관리에 걸쳐 할 수 있는 업무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이 기준을 보면, PA 간호사는 수술 부위 봉합과 매듭, 동맥과 정맥의 결찰을 비롯한 위험한 수술의 보조행위 등의 치료 및 처치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반면 기관 삽관이나 중심정맥관 삽입 등은 PA 간호사에게 위임이 불가한 의료지원 행위로 명시됐다.
3월 초에는 의료기사들의 반발로 인해 '심전도·초음파·혈액 검체채취·혈액 배양검사(Blood culture) 등 행위는 법에 명시된 의료기사 인력의 우선 배치를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불가한 경우 의료기관장의 결정 하에 '시범사업 적용'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의사에게 주어진 일을 간호사가 하는 것이 현행법상 불법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지만,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으로 의료현장에서 활동하는 PA간호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의료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암센터에서 각각 전체 수술의 27.2%, 94.3%에 PA간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PA 활용 처벌 사례 잇따라…의료진 면허 취소 위협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PA 간호사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PA를 활용한 병원들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부는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PA 간호사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의료법에는 규정돼 있지 않은 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1월11일 어깨 염증 환자에게 체외충격파 시술을 한 간호사와 이를 지시한 의사에 대해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행위)을 이유로 벌금형을 확정했다.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전담간호사가 근골격계 체외충격파 시술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사법부는 이를 불법으로 판단해 형사처벌하고 해당 의료인은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
현행법 및 정책에 대한 의사들 불만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관련 법률 규정 때문이다.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보특법)은 '부정의료업자'에 대해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이와 함께 벌금형을 병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죄 경중에 관계없이 일단 보특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징역형 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밖에 없도록 해놓은 것이다.
여기서 부정의료업자란 무면허 의료 행위를 '업(業)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며, 현 판례에 따르면 무자격자로 하여금 의료 행위를 계속·반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경우 당사자 본인이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부정의료업자로 처벌받을 수 있다.
PA간호사·간호조무사에게 수술·진료 보조 등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 일을 하게 하면 병원장과 의사까지 보특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을 경우 면허 결격 사유에 해당돼 의사면허를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PA 간호 인력을 활용하는 의사는 보특법을 위반한 것으로 평가돼 아무리 가벼운 사안이라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의료법에 따라 징역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면허가 취소되기 때문에 PA 인력을 활용하는 의료인은 언제든 면허 취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수사기관이 단속에 나서 현행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의사들은 자격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국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간호사, 간호 조무사들의 수술 및 진료보조 행위에 대해서까지 무작정 사법처리하고 자격 정지, 면허 취소, 영업 정지 등 강력한 행정 처분을 하는 것에 대해 수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잠재적 범죄자로 내모는 '보특법'
업무를 위임하는 의사와 위임받는 간호사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 수 있는 논란이 되는 건 1969년에 제정된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보특법)'이다.
이 법은 당초 의사나 한의사 면허가 없이 의료행위를 하던 이른바 '돌팔이 의사'를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 '부정의료업자'에 대해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벌금형을 병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일단 보특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징역형 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는 것이다.
무면허 의료 행위를 막기 위한 법률 규정이 오랜 기간 법원이 해석을 거듭하면서 무면허 의료 행위를 시키는 사람이 의사인 경우에도 보특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례로 형성돼온 것이다.
의사가 주도하는 진료 및 수술 행위에 PA간호사·간호조무사가 보조적 역할로 참여하는 경우까지 부정의료업자라 보고 보특법을 적용하는 것은 법 제정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난다는 게 의료 전문가들 지적이다.
PA 활용 의사에 무리한 법적용 안돼
보특법은 의사가 아닌 자가 무면허 의료 행위를 '업(業)으로' 할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해놓았다. 따라서 '업으로' 했는지 여부가 보특법을 적용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게 의료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특법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무면허 행위자가 무면허 의료 행위를 '업으로' 한 정황이 있어야 하고 무면허 의료 행위자 본인이 영업 주체가 돼 주도적이고 자발적이며 독립된 형태로 무면허 의료 행위를 반복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의사가 주도하는 진료 및 수술 행위에 대해 PA 간호사 및 간호 조무사가 보조적 역할로 참여하도록 하는 경우까지 부정 의료업자로 보아 보특법을 적용할 경우 정부의 PA간호사 확대 제도화는 요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PA 활용에 대한 수사 기관의 법적용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PA를 활용해 수 십차례 수술 행위를 한 의사에 대해 단순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적용해 벌금형을 구형하는 사례가 있는 반면, 불과 수건의 수술에 PA가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보특법을 적용하는 사례도 있다.
수사 기관의 자의적인 법적용이 가능한 영역이다보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의료업계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사안의 경중과 무면허 의료 행위의 건수, 의사의 개입 여부 등에 따라 의료법 위반이나 보특법 위반 적용 기준을 엄격히 구분하고 경찰 및 검찰의 내부 기준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