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차관 “통일, 한쪽이 굴복하는 형태는 안돼”
2024.05.03 18:19
수정 : 2024.05.03 18:1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한 쪽이 승자이고, 한 쪽이 굴복하는 형태보다 같은 눈높이에서 통일하는 게 중요하다”
제13차 한독통일자문회의 참석차 방한한 카스텐 슈나이더 연방총리실 정무차관 겸 구동독특임관이 3일 우리나라 취재진들 앞에 서서 남북통일에 관해 내놓은 제언이다. 북한이 스스로 무너지거나, 무력으로 무너뜨려 흡수통일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슈나이더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 직후 약식 인터뷰에 나서 독일 통일 과정을 언급하며 “같은 눈높이에서의 통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핵심적인 건 통일 프로세스에서 동독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대변됐다는 것”이라며 “2국가 체제 공존도 남북이 각자 자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할 일이고, 독일도 주민투표를 통해 스스로 통일을 결정했다. 통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 분단 당시 경제력 우위를 점했던 서독은 통일을 목표로 동독과의 교류를 늘리고 동독의 개혁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애썼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예상치 않게 급속히 통일이 진행됐을 때에도 10단계 통일방안을 바탕으로 여러 조약들을 거치며 동독의 입장을 반영했다.
독일처럼 양측이 함께 통일을 이뤄내기 위해선 굳건한 통일 목표, 또 북한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필요하다는 게 슈나이더 차관의 조언이다.
슈나이더 차관은 “북한 주민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통일이라는 목표를 잃지 않고 유지해야 예상치 못한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며 “동독에서 살았던 10대 때 폴란드·체코·헝가리 등 주변 공산권 주민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걸 느꼈다. 북한 청소년들도 마법의 단어인 자유를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 정권이 제시하는 틀이 아닌 독립적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노선 변경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슈나이더 차관은 김 위원장이 우리나라를 ‘주적’이라 규정하며 2국가론을 제기한 데 대해 “북한이 대외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하지만 내부 문제를 잠재우려는 행동인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슈나이더 차관이 제시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 힘쓰는 동시에 북한의 2국가론에도 불구하고 ‘한민족’과 ‘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슈나이더 차관과 만나 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제시한 자유통일비전을 소개하며 “독일 통일의 경험과 교훈을 참고해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갈 것이다. 독일 측의 협조와 지지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슈나이더 차관은 윤 대통령의 비전에 공감하며 남북통일을 위한 양국 간의 연대와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북한 주민 인권 개선 협력에 뜻을 같이 했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