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휴직' 격차사회

      2024.05.06 18:53   수정 : 2024.05.06 21:12기사원문
"아내가 곧 둘째를 낳아 다음달부터 6개월간 육아휴직에 들어갑니다."

최근 대기업 팀장급 40대 한 남성 지인은 식사 자리에서 이런 소식을 전했다. 40대 초·중반 남성의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쓸 수 있는 직장문화에 짐짓 놀라 되물었다.

"눈치 안 보여요? 거긴 (그래도) 괜찮아요?"가 내 첫 반응이었다. 이 반응에 동조한다면 '옛날 사람 인증'일지 모른다.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 0.72명(2023년). 그것도 수도 서울의 출산율이 0.53명밖에 안 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말이다.

나의 구식 반응과 달리, 사실 대기업들은 최근 들어 확실히 변했다. 군대식 문화로 손꼽혔던 현대자동차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285명(2022년)이다. 실제 현대차 측에 "이 인원이 맞느냐"고 물어봤다. "요새는 눈치 안 보고 한 6개월씩은 쓴다"는 답이 돌아왔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아빠들 중 육아휴직자는 2021년 이미 1000명을 돌파했다. 2022년에는 1031명을 기록했다. 같은 해 여성 육아휴직자가 3054명이니 삼성전자에서 최소 4000명 이상의 아기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삼성전자 육아휴직자의 직장 복귀율이다. 과거 93%였던 육아휴직자 복귀율이 남성 96%, 여성 98.9%를 기록했다. 거의 100%에 가깝다. 육아휴직자에게 "승진 포기했느냐"는 말은 요즘엔 꺼내지도 않는다고 한다. 육아휴직에 따른 인사 불이익이 상당부분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대기업들은 한술 더 떠 육아휴직을 기존 법정기간 1년에 추가로 1년 연장해 최장 2년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4대 그룹만 따진다면 이른바 '라떼파파'(한 손엔 라떼,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끄는 남성)들이 연간 수천명 선이다. 경력단절도 마다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던 여성, 손주들을 위해 기꺼이 생애 마지막 에너지를 희생한 할머니들이 지탱해온 육아에 아빠들이 적극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계속 하락이다. 남성 육아휴직자 10명 중 6~7명이 대기업 종사자들이다. 중소기업계에선 "대기업 아빠, 공무원 아빠 그들만의 리그"라고 말한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남성 중 절대다수는 인력 부족, 사내 분위기 등으로 말도 꺼내기 어렵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은 "아빠 육아휴직 1호 신청자가 될까 생각도 했지만 회사 인력구조를 생각할 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남성 육아휴직은 곧 퇴사, 승진 이탈이라는 공포도 여전하다. 저출산 대책이 더욱 세심하게 짜여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수직 하향하고 있는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부양하려면 대중소 육아휴직 격차 사회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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