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불타고 있다"

      2024.05.06 18:56   수정 : 2024.05.06 18:56기사원문
1986년 3월 덩샤오핑 시대 개혁개방의 바람이 중국을 덮치고 있을 때였다. 세계 굴지의 회사들이 중국의 값싼 노동력, 거대한 신시장에 취해 앞다퉈 합작사를 세우던 시기다. 원자력, 인공위성 분야 과학자 4명이 덩샤오핑에게 편지 한통을 보낸다.

더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미래 분야가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덩은 편지를 읽고 바로 움직인다.
이틀 만에 과학자들의 핵심 제안에 대한 모든 승인을 끝내고 당 지도부에 단단히 일렀다. "이 문제에 관해 지체없이 빠른 결정을 내리시오." 이로부터 6개월 후 중국의 첫 첨단기술 연구발전구상이 세상에 나왔다. 이른바 '863 계획'이다. 7개 신기술에 정부가 사력을 다해 자금을 투입하고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여기에 신에너지, 바이오, 우주, 정보통신 등의 기술이 포함됐다. 첫해 지원금은 100억위안이었다. 당시 정부 총지출의 5%에 이르는 금액이다. 863 계획은 2016년 다른 정부구상과 합쳐져 새로운 기술로드맵에 통합됐지만 당초 설계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전기차가 863 계획에 포함된 것은 2001년이다. 그 전에 중국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이끌 인물을 백방으로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사람이 1991년 독일에서 공대 박사학위를 받고 아우디에서 10년차 엔지니어로 있던 완강이다. 그는 이미 독일 자동차업계 최고 엘리트 열명 중 한명에 꼽히는 유명인사였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 중국생활과 비교하면 말할 수 없는 성공이었다.

완강의 청소년기는 암울했다. 부모가 문화대혁명 시대 반혁명분자로 몰리면서 가족 전부가 지방으로 쫓겨났다. 거기서 농사 짓고 연기 풀풀 나는 트랙터를 고치며 대학을 다니다 고향 상하이로 돌아온 것이 1979년이다. 그 뒤 세계은행 장학금으로 유학을 떠나 독일 자동차업계 유망주로 급부상하던 무렵 중국 당국의 요청을 받은 것이다. 주룽지 총리까지 나서서 그의 귀국을 설득했다. 고심 끝에 완강은 다시 중국 땅을 밟는다. 그때가 2000년이다.

중국의 전기차 새 판은 완강의 머리에서 나왔다. 중국의 대기오염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이 됐고, 석유의존도를 낮춰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는 일도 시급한 현안이었다. 이를 해결하면서 세계 자동차시장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전기차에 국가 총력전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한 이가 완강이었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기술에 대대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완강은 2007년 과학기술부장(장관)에 올랐다. 해마다 10개 도시를 선정해 1000대의 전기차를 보급하는'십성천량' 계획은 그의 주도로 베이징올림픽 이듬해인 2009년부터 시작됐다. 첫해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친 성적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빛이 보였다. 이때 경제특구 선전에서 대활약을 펼친 신생기업이 다름아닌 비야디(BYD)였다. 배터리회사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발을 넓힌 뒤 지난해 미국 테슬라를 꺾고 세계 1위 전기차기업이 된 그 비야디다. 완강은 2018년까지 11년간 장관으로 재임하며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인프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열린 베이징 모터쇼(4월 25일~5월 4일)에서 중국 전기차의 진면목을 봤다는 이들이 많다. 넉달 전 첫 전기차 SU7을 출시한 샤오미 부스엔 연일 구름인파가 몰렸다. 포르쉐에 도전장을 내민 비야디 전시장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난해 일본, 독일을 밀어내고 세계 자동차 수출국 1위도 거머쥐었다. 폭스바겐 대표 토마스 셰퍼는 질주하는 중국에 놀라 "지붕이 불타고 있다"고 했을 정도다. 세계를 호령했던 자동차기업의 지붕이 중국 공습에 주저앉게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기차 생태계는 독일보다는 낫겠지만 이걸로 충분치 않다. 중국은 이제 자율주행, 스마트카 주도권을 넘본다.
덩샤오핑의 863 계획과 완강의 로드맵, 40년 가까운 중국 전기차 마라톤 경주는 여러 교훈을 준다.

jin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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