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4E 팬텀 '필승편대' 49년 만의 고별 국토순례 비행
2024.05.12 13:32
수정 : 2024.05.12 17:10기사원문
공군은 대한민국 영공을 55년간 한결같이 수호해 온 공군 F-4E 팬텀 편대 4대가 퇴역을 앞두고 지난 9일 49년 만의 국토순례 비행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12일 밝혔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이 ‘필승편대’로 명명한 F-4E 팬텀 편대는 대한민국의 영공 곳곳을 순회하며, 국민의 사랑과 성원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필승편대라는 명칭은 1975년 방위성금으로 구매한 F-4D 5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부여한 바 있다.
1969년 팬텀 도입 후 퇴역을 한 달가량 앞둔 이날 필승편대는 경기도 수원, 평택, 충청도(성환, 천안, 청주, 충주), 경상도(울진, 포항, 울산, 부산, 거제, 대구, 사천), 전라도(여수, 고흥, 가거도, 군산) 등 전국을 누비며 팬텀의 역사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주요 거점 상공을 고별 비행했다.
‘필승편대’ 전투기들은 팬텀의 과거 도색을 복원해 그 의미를 더했다. 동체측면의 스페셜 마킹도 눈길을 끌었다.
편대 전투기 4대 중 2대는 한국 공군 팬텀의 과거 도색이었던 정글무늬(Jungle Camouflage Pattern)와 연회색(Light Gray) 도색으로, 2대는 현재의 진회색(Dark Gray) 도색으로 비행했다.
또한, 동체측면에는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라는 기념 문구와 함께, 팬텀의 아이콘인 스푸크(Spook)’가 그려졌다. 문구 왼쪽에는 빨간마후라와 태극무늬를 더한 스푸크가, 오른쪽에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頭釘鉀)을 입은 스푸크가 눈길을 끈다.
‘스푸크’는 팬텀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항공기의 후방 모습을 보고 착안해 그린 캐릭터로, 팬텀을 운용한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았다. 팬텀을 후방에서 바라봤을 때 마치 서양의 전통적인 유령(Phantom)과 흡사해보여 생겨난 캐릭터다. 밑으로 처진 수평꼬리날개는 유령이 눌러쓴 모자로, 두 개의 엔진 배기구는 유령의 두 눈처럼 보인다.
■수원기지 활주로 이륙, 경기, 충청, 강원, 경상도 일대 비행
필승편대는 모(母)기지인 수원기지 활주로를 박차고 힘차게 이륙했다.
1975년 대한민국 정부는 온 국민이 한반도 내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은 방위성금 중 71여억 원을 들여 F-4D 5대를 구매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5대의 팬텀 전투기를 ‘필승편대’라고 명명했다. 같은 해 12월 12일, 수원기지에서 ‘방위성금 항공기 헌납식’이 거행됐다.
필승편대는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전국 12개 주요 도시 상공을 비행하는 순회비행을 실시했다.
이어 필승편대는 평택 상공을 지나 천안으로 향했다. 평택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와 대한민국 서해안 무역의 중심부인 ‘평택·당진항’이 있다.
충청도에 진입한 필승편대는 옛 성환 비상활주로가 있었던 경부고속도로 북천안 IC쪽을 향해 비행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완공됐고, 2년 뒤인 1972년 5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주관으로 ‘F-4D 성환 비상활주로 이착륙 시범행사’가 개최됐다. F-4D는 이때 고난이도의 비상활주로 이착륙을 성공하며, 최신예 전투기 성능의 우수성을 과시했다. 아울러 국내 기술로 완공한 경부고속도로의 완성도를 증명하기도 했다.
이어 필승편대는 천안 독립기념관 상공을 지나 충주를 향했다. 독립기념관은 우리나라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기린 곳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핵심기지로 손꼽히는 충주기지와 청주기지 상공을 차례로 통과했다. 충주기지는 (K)F-16을, 청주기지는 F-35A를 운용하고 있다. 한때 최강의 전투기였던 팬텀은 ‘공군 주력 전투기’ 자리를 (K)F-16에게, ‘대북 게임 체인저’라는 칭호를 F-35A에게 각각 내주게 된다.
특히, 1979년부터 2018년까지 팬텀이 배치돼 있던 청주기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텀을 운용했던 기지이기도 하다.
충청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넘은 필승편대는 팬텀이 주요작전을 펼쳤던 동해안을 따라 포항으로 향했다.
냉전시대 팬텀은 TU-16(1983년), TU-95와 핵잠수함(1984년) 등 우리 영공과 영해를 침범한 구(舊) 소련 전력을 식별·차단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냉전시대 이후인 1998년에도 우리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IL-20 정찰기에 대한 전술조치를 했다.
이어 포항과 울산 그리고 부산, 거제 등 대한민국 중공업과 무역업의 부흥을 이끈 주요 도시들을 지났다.
포항에는 1983년 완공된 포항제철소가 있다. 울산에는 1962년부터 조성되어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업, 자동차 제조업, 조선업 등을 주도한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가 있다.
부산에는 대한민국을 무역대국으로 이끈 세계에서 6번째로 큰 항만 ‘부산항’이 있다. 조선업 관련 업체 400여 개가 밀집해 있는 거제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선소라 불릴 만하다.
■이어 대구기지서 재급유, 사천·여수 남해안과 고흥, 서해안 따라 군산기지로
경기, 충청, 강원, 경상도를 숨가쁘게 비행한 필승편대는 재급유를 위해 ‘팬텀의 고향’ 대구기지에 착륙했다.
대구기지는 1969년 8월 29일,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최초의 F-4D 인수식이 개최되었던 장소다. 대한민국은 영국, 이란에 이어 네 번째로 팬텀 전투기를 보유한 국가였다.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기였던 F-4D의 도입으로 대한민국은 한순간에 북한의 공군력을 압도했다.
같은 해 9월 23일에는 최초의 F-4D 비행대대인 제151전투비행대대가 대구기지에서 창설됐다. 1개 대대의 창설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축하할 만큼 그 의미와 상징성이 컸다. 이어 제152·153·159전투비행대대가 잇따라 창설되며, 대구기지는 팬텀의 주 기지로 거듭났다.
2005부터 도입된 F-15K는 팬텀의 바톤을 이어받아 대구기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재급유를 마친 필승편대는 사천 상공으로 향했다. 사천은 KF-21을 개발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치해 있는 곳이자, 오는 5월 27일 우주항공청이 개청을 앞둔 도시다.
필승편대가 사천 상공에 이르자 시험비행이 한창인 KF-21 2대가 합류해, 미래 공군전력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기원하며 함께 비행했다.
이어 F-4E와 KF-21 편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구국정신이 어린 여수 등 남해안을 지나 나로우주센터가 위치한 고흥으로 향했다. 외나로도 상공까지 함께 비행한 KF-21 2대는 ‘대선배’ 팬텀의 노고와 활약에 경의를 표하고 사천으로 복귀했다.
필승편대는 남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비행하던 필승편대는 이윽고 소흑산도로 불렸던 가거도에 이르렀다.
팬텀은 동해뿐만 아니라 서해에서도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줬다. 1971년 소흑산도에 출현한 간첩선을 격침하는 작전에 일조했고, 1983년에는 북한 이웅평 대위가 MiG-19를 몰고 연평도 상공으로 귀순했을 때 퇴로차단과 초계비행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이어 필승편대는 서해안을 따라 美 제8전투비행단(이하 美 8비)이 주둔하고 있는 군산기지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방위성금헌납기 당시 모습으로 도색한 팬텀을 몰았던 박종헌 소령은 "1975년 국민들의 성금으로 날아오른 필승편대의 조국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이 퇴역한 후에도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대부분 퇴역하고 F-4E 10여 대만 남은 팬텀의 퇴역식은 내달 7일 수원기지에서 열린다.
공군 관계자는 "다음달 퇴역식에 해외 취재진 100여 명이 취재 신청을 했다. 외국 언론도 팬텀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퇴역한 팬텀은 전국 곳곳에서 전시되거나 적 세력의 유도탄이나 각종 탐지장비들을 혼란시키고 교란하기 위한 '디코이'로서 활주로 등에 배치될 예정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