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 강조해온 원로 의사들은 왜 말이 없나
2024.05.19 19:49
수정 : 2024.05.19 19:49기사원문
의과대학생 단체(의대협)가 19일 "서울고법의 (의대 증원·배정) 집행정지 기각은 대한민국의 법리가 검찰 독재 정부에 의해 무너져 내린 것을 여실히 보여준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한 것만 봐도 그렇다. 자신들이 신청한 사건이 기각됐는데 왜 법리가 정부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의대협은 "학생들은 대한민국 미래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막겠다" "정부가 학생들의 수업복귀를 호소하는 것은 오만한 행태"라고 하는 등 정부가 의사들에게 해온 말을 자신들의 주장에 대입시켜 거꾸로 쏟아내고 있다. 얼마나 할 말이 없었으면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오만한 언행을 반복해온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정부와 국민에게 도로 뒤집어 씌울까.
국민도, 정부도, 사법부도 모두 무시하는 안하무인. 이것이 오만불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판사와 검사의 '사'는 일 사(事)자 이고, 변호사의 '사'는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러나 의사와 약사, 간호사의 '사'는 교사의 그것처럼 스승 사(師)자를 쓴다. 병을 고쳐주고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일이 바르게 가르치어 사람이 되게 하는 스승과 같다는 뜻이다.
서양의 양의사든 동양의 한의사든, 옛날의 의사는 이런 의사의 사명을 더 중시했을 것이다.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상대적으로 세속화가 덜 된 것은 사람을 가르친다는 사명감과 보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래로 사람들은 의사라는 직업인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존경했을 것이다.
현대의 물질주의의 범람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을 가진 직업들은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고, 부자가 되기 위해 그런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가장 고난도인 기술을 가진 의사는 부유층, 상류층이 되었고 한국에서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금전에의 예속, 즉 '돈의 노예'가 되어 갔다.
병원을 자주 드나드는 국민이라면 이런 의사들의 행위를 자주 목격했을 것이다. 아픈 사람을 고치는 것보다 아픈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병원에 가면 마치 자동차 수리 견적을 내듯이 진료비부터 계산하는 의사나 병원의 사례를 우리는 흔히 경험하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이 죽어가도 생명보다 돈을 중히 여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의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 자체 예산도 부족한 지자체들이 수억원의 보수를 제시해도 본체만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사들에게 인술(仁術·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말은 옛날 옛적의 전설로 보일 뿐이다.
지금 의사들에게서 인술은 실종된 상태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의사들은 졸업식에서 손을 번쩍 들고 읊고 나왔고, 의대협 학생들은 곧 선서를 할 것이다. 이제는 선서를 하지 말라. 지키지 않는 선서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이 땅에도 돈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환자의 치료에 전념하며 인술을 펼치는 의사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의사 사회는 너무 세속에 물들었다. 온갖 핑계로 정책에 반대해 봤자 속내는 훤히 들여다보인다. 의사 부족은 통계적으로 증명돼 있다. 한국은 일종의 의사 과점 상태다. 독과점이 경제민주주의에 반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안다. 과점을 깨려고 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것과 동일하다.
국민이나 정부나 어디에 더 호소할 데도 없다. 이제 원로들이 나설 차례다. 인술을 강조하고 가르치던 원로 의사들은 지금 어디에 다 숨었는가. 후학들의 태도가 바르지 않다면 스승의 이름으로 훈계하고 나서야 한다. 의사의 바른길을 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