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도 입법폭주와 거부권 악순환 끊을 책임있어
2024.05.21 18:28
수정 : 2024.05.21 18:28기사원문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지난 2년간 거부권을 행사한 건 이번이 10번째에 해당한다. 거부권 행사 횟수만 놓고 보면 대통령이 지나치게 남발하고 있다는 비난을 살 수 있겠다. 그러나 국내 정치구도상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한 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과도한 입법폭주가 이어질 때 견제와 균형을 위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당위성을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부권 정국처럼 비치는 이면에는 여소야대 정치구도가 자리잡고 있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야당이 국회를 주도할 것이다. 야당 의석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여야 합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법안이 늘었다. 그야말로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가 아닐 수 없다. 채 상병 특검법 외에도 추가로 야당 단독으로 밀어붙이는 법안들이 대기 중이다. 대표적인 게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야당이 밀어붙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낳게 하는 악순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민의를 거스른 대통령의 독단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로 민심 반영이 왜곡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정 운용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보루와 같다. 대통령의 거부권 역시 헌법에 보장된 권한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견제와 균형을 위한 수단으로 거부권이 도입돼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11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미국 대통령제에서도 역사상 2595건의 대통령 거부권이 발동됐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임기 중 63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탄핵이 거론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자칫 21대뿐만 아니라 22대 국회에서도 정쟁의 도화선이 될 우려가 크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통령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정쟁몰이에 가세할 태세다. 더구나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이 21대 국회에서 폐기되더라도 22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재추진을 예고한 바 있다. 결국 채 상병 특검법은 야당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대신 절차적 순리에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역할론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에 공정성이 의심되는 특별한 사안에 대해 보충적, 예외적으로 도입하는 게 특검이다. 채 상병 의혹을 수사하는 공수처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을 재소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의 공수처를 만든 게 민주당 아니었나. 공수처 수사를 건너뛰고 특검으로 직행하다간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만 커질 뿐이다. 입법폭주와 거부권의 악순환을 끊을 책임은 거대 야당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