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슴다·방구워요…한글박물관 '방언' 터졌다
2024.05.31 04:00
수정 : 2024.05.31 09:14기사원문
"그간 어떻게 지냈시요"(평안도), "반갑슴다. 다들 어째 지냄까"(함경도), "안녕하시우야, 우터 이래 반갑소. 방구워요"(강원도), "아이고,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디야."(충청도), "내는 잘 지낸다. 진짜 오랜만아니가"(경상도), "아따. 뵌 지 오래시. 저기 날도 더운데 어쭈고 산가"(전라도), "잘도 오랜만이우다예. 어떵헹 지냄수과"(제주도) -'반갑다'는 의미의 각 지역 방언
과거 국가 중심의 표준어 정책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방언(사투리)에 대한 개념과 의미,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방언은 '오방지언'(五方之言)의 줄임말로, 동서남북과 중앙을 의미했다. 그러나 서울의 위상이 날로 커지면서 표준어와 방언이 나뉘고 방언은 변두리의 말, 즉 비공식적인 말이 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번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됐다. 1부 '이 땅의 말'에서는 옛 문헌의 기록에서부터 현대의 미디어 콘텐츠까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지역 방언의 말맛과 특징을 소개한다. 2부 '풍경을 담은 말'에서는 방언 화자가 손으로 직접 쓴 방언과, 타지 사람이 귀로 듣고 기록한 방언을 통해 방언에 담긴 삶의 풍경을 살펴본다.
또 3부 '캐어 모으는 말'에서는 방방곡곡 발로 뛰며 방언을 캐어 모은 여러 사람의 노력을 소개한다. 실제 방언 조사에 사용한 각종 장비와 기록물, 방언 지도, 다양한 방언 사전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동학농민혁명군 한달문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1894년)는 동학농민혁명군 한달문이 나주 감옥에 갇혀 어머니에게 쓴 한글편지에 절박함이 담겨 있다. 그는 편지에 "어마님 불효한 자식을 깊피(급히) 살려주시오. 기간(그간) 집안 유고를 몰라 기록하니 어무임 혹시 몸에 유고 계시거던 졋자라도(옆사람이라도) 와야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조선시대 무신 이서(1580~1637)의 '화포식언해'(1635년)는 각종 화포와 화약 사용법을 모은 책으로, 서양식 청동 화포인 '불랑기(佛狼機)'를 소개하면서 '부리예 ᄇᆞᄃᆞ시 들 연ᄌᆞ(입구에 겨우 들어갈 납탄)' 한 개씩을 쓰라고 설명하고 있다. 'ᄇᆞᄃᆞ시'는 는 현재 전라 지역에서 '겨우, 간신히'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포도시'의 옛말이다.
최남선(1890~1957)이 편찬한 '소년'을 통해서도 일제강점기 당시 각 지역의 다양한 방언을 살펴볼 수 있다. '소년'은 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교육과 계몽을 위해 만든 월간 잡지로, '소년통신'이라는 투고란을 통해 각지 독자들이 보내온 방언을 소개한 바 있다.
'소년통신'에 실린 경북 봉화 출생 강희목의 사연에서는 "경상북도 안동군읍 근처 이삼십 리 동안에 '-ᄭᅥᆼ'이란 방언이 있으니 서울말노 하면 '심니가'의 의(意)라. 가령 '오섯슴니가'라 할 것이면 여긔 사람은 '왓니ᄭᅥᆼ'이라 하고 '가심니가'라 할 것이면 '갓니ᄭᅥᆼ'이라 하오. 그럼으로 이곳 속담에 '안동읍장은 3ᄭᅥᆼ이면 파(罷)한다' 하나니 '왓니ᄭᅥᆼ, 장 다 보앗니ᄭᅥᆼ, 갓니ᄭᅥᆼ'을 두고 말함이오"라고 적혀있다.
이밖에 과거 방언 연구자들의 실제 방언 조사 노트를 통해서도 수집한 방언 어휘와 음성, 현지 조사 일지 등을 알 수 있다. 현지 조사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방언이 쏟아지는데, 적지 않으면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즉시 적을 수 있도록 휴대가 간편한 작은 크기의 수첩을 들고 다녔다고 방언 연구자들은 회상했다. 또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등 각 지역 방언 화자의 음성이 고스란히 담긴 테이프들도 방언 연구의 방대함과 방언 연구자들의 끈기, 열정을 엿볼 수 있다.
김일환 국립한글박물관장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우리 말과 우리 글자의 다채로움과 서정성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 사투리 관련 기획전을 마련했다"며 "감미로운 말의 섬세한 부분까지 표현 가능한 한글의 우수함을 체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