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의 묘수는 서비스업 활성화
2024.06.02 19:16
수정 : 2024.06.02 20:18기사원문
그런데 사실 대대적 투자나 획기적 혁신을 하지 않고도 쉽게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묘수가 있다. 바로 서비스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은 강하지만 서비스업이 취약해 내수침체와 소비부진이 발생하며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도 근본적 원인이 서비스 분야의 낙후성에 있다고 분석되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약점으로 서비스업 부진을 꼽았다. 금융, 유통, 의료, 교육, 행정, 법률 등의 서비스가 효율적이지 않은 것이 내수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이런 서비스업이 발달하지 않으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도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2011년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국회에서 14년째 표류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제조업 중심의 산업정책에서 서비스업은 경시됐다.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에 제조업은 생산, 서비스업은 소비라는 인식이 강했다. '저축은 미덕, 소비는 악덕'이라는 구호가 등장할 정도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상충적 관계로 보았다. 서비스업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편견이 팽배했다. 지금도 이런 인식이 남아 있다. 골프나 카지노가 그 예에 속한다. 골프는 사치성 운동이고, 카지노는 사행성 노름으로 치부한다.
좌파적 유물론을 신봉하는 진보학자와 시민운동가도 서비스의 가치를 폄하하여 서비스업 발달을 막고 있다. 사회주의 사상은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서비스업을 기생산업으로 치부한다. 금융업, 유통업, 임대업에 대한 규제도 그 뿌리는 유물론적 사고에 있다.
민주적 평등성을 추구하는 가치관도 서비스업 규제에 기여한다. 교육, 의료, 교통은 보편적 서비스로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비영리 공공성을 요구한다.
택시, 청소, 수리, 배달과 같은 생활서비스는 소상공인을 위한 생계형 서비스업으로 간주되어 경제적 약자의 생업보호 차원에서 적합업종이나 생계형 업종으로 규제한다.
서비스업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필요하거나 매우 불필요한 서비스 두 가지로 양분하고 둘 다 규제한다.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의료, 교육 등의 서비스는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하므로 영리기업을 규제한다. 반대로 사회적 필요성이 낮은 위락, 여가, 중개 등의 서비스는 확대를 막기 위해 엄격히 규제한다.
결국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는 촘촘하고 인허가 요건이 까다로워 서비스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 한마디로 서비스업은 규제산업인 것이다. 이런 연유로 서비스산업 발전에 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규제논리에 가로막혀 진전이 안 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서비스업을 방치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경제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수출과 내수의 두 바퀴를 같이 키우지 않고는 불균형과 양극화를 해소할 길이 없다. 현재 인공지능을 필두로 가속화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도 서비스업 혁신을 필요로 한다. 부가가치의 원천도 제품에서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보다 앱스토어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AI로봇이 운전하는 자율주행차는 자동차를 제품에서 서비스로 변신시킬 것이다. 이런 추세에 편승해야 우리도 진정한 혁신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 과거 50여년을 제조업이 먹여 살렸다면 앞으로 50년은 서비스업이 먹여 살려야 한다. 서비스업 혁신은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묘수이다.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