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강요하는 리더들

      2024.06.09 18:10   수정 : 2024.06.09 18:39기사원문
리더는 대체로 듣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듣기는 듣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잘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자신이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사로잡힌 리더는 자신이 가장 전문가이고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다른 사람, 특히 부하직원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딜로이트의 대표이자 혁신·전략 전문가인 제프 터프는 '리더의 잘못된 질문'이 조직의 혁신을 죽인다고 지적한다. 신사업개발 회의가 진행 중이라 하자. 사전에 '어떠한 제한도 없는 허심탄회한 자유토론'이라고 수차례 공지된 터라 팀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준비한 상태다.
그런데 회의 내내 조용히 듣고 있던 임원들이 질문을 시작한다. '내부수익률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어디를 벤치마킹 했나' '인원을 좀 줄일 수는 없는가' '비용을 낮출 수는 없는가' 등 어떻게 성공을 입증할 것인지를 묻는 내용뿐이다. 리더의 질문은 단지 성공가능성과 코앞의 수익성을 증명하라는 요구이고, 구성원들이 밤을 새우며 고민한 아이디어의 배경, 장기적인 방향성이나 혁신성 등은 뒷전이다. 성공을 입증할 수 있어야만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혁신의 돌파구를 찾을 방법은 없다.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는 한 팀원들은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침묵을 택하게 된다.

'인사이드 아웃' '토이 스토리'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는 항상 관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기발함과 경이로움을 보여주며 '믿고 보는 영화사'라는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한때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내 인생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이토록 빼곡히 모여 있는 집단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훌륭한 인재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 픽사의 놀라운 능력은 임직원들이 기탄없이 토론하고 즐겁게 협업할 수 있는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필요할 때마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받는 통로이자 집단지성을 창출하는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가 그것이다.

최고경영진부터 제작진의 막내까지 모두 참석하는 이 회의에서 구성원들은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조직에서 어떻게 이런 회의가 가능할까, 바로 리더가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회의의 목적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까지 아주 작은 흠결까지 샅샅이 찾아내어 미리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리더의 생각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더라도, 상사에게 찍혀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원칙을 준수한다. 문제를 비판할 수 있지만 사람은 칭찬의 대상도, 비난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잘못의 대상이 작품이 아닌 사람이 될 때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상사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자랑도,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변명도 할 필요가 없다. 하이라이트는 토론 결과의 반영 여부는 전적으로 해당 작품의 감독이 결정하고, CEO를 포함한 경영진은 열심히 경청만 하고 지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레인트러스트는 리더의 '경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경청이란 단지 '듣는 행위'가 아니다. 상대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구성원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능력과 선한 의도를 신뢰하는 것이 경청의 본질이다. 그래서 냉정한 자기인식이 되지 않는 리더는 경청이 어렵다. 능력보다 과분한 자리에 앉은 리더들은 비켜서야 할 때를 알지 못해 오히려 길을 막고 서있을 뿐이다.


바람직한 집단지성은 의사결정 시스템의 혁신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협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해내는 회복력, 이것이 집단지성의 진정한 힘이다.
입을 닫고 귀를 열자 그리고 기다리자. 이것이 집단지성을 위한 리더의 역할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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