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로또' 1장 긁는데 1000억원"..20% 당첨률 5장은 사야
2024.06.11 05:00
수정 : 2024.06.11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0%의 확률로 동해 앞바다에 석유·가스가 묻혀있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은 직접 파보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추정되는 최대 매장량은 140억배럴로 '21세기 최대 심해 유전'으로 불리는 가이아나 리자 광구의 120억 배럴을 뛰어넘는다. 단숨에 산유국 반열로 올라설 수 있는 '로또'지만 참가비가 만만찮다.
10일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는 내년도 예산안에 1개 시추공 비용에 해당하는 1000억원 가량을 반영해 내년 상반기까지 첫 시추 단계를 진행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은 2026년까지 동해 심해에 최소 5개의 시추공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말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부처별 예산요구서에 '(국내외) 유전개발사업출자' 증액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석유공사는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한 산업부의 산하기관이다. 초기 시추 비용 1000억원 가운데 50% 가량을 석유공사가 대고 나머지 50%를 중앙정부가 석유공사에 융자하는 방식으로 사업비를 융통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우리 정부가 편성한 유전개발사업출자 예산은 481억원 수준이다. 전년보다 59.8% 늘어난 규모지만 여전히 시추 융자 규모인 '최소 5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년 예산으로 시추를 진행할 경우 1.6배 가량을 튀긴 전년에 이어 연속으로 증액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미 각 부처로부터 예산 계획안을 제출받아 심사 과정에 들어가 있다. 지난해 대폭 삭감을 겪은 연구개발(R&D) 예산의 원상복구가 예정돼있고, 반도체 산업과 저출산고령화 대응에도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선포했다.
반면 정부의 재정 기조는 여전히 긴축에 가까운 만큼 다른 분야에서는 '엄격한 지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확률이 보장되지 않은 유전개발 사업에 섣부른 증액이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약 120억 배럴의 매장량을 기록한 가이아나 리자 광구의 경제적 가치는 1000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진다. 만약 영일만 유전의 매장량이 예측대로 최대 140억 배럴에 이른다면 단순계산으로 약 1200조에 가까운 '재정 프리미엄'을 갖게 된다. 재정 고갈이 우려되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또는 결손 우려가 높아지는 세수 등을 단숨에 보완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자원개발의 특성 상 '모 아니면 도'에 가까운 도박성이 예산 편성을 강력하게 가로막고 있다. 지질 분석을 맡은 미국의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Vitor Abreu) 고문도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추 뿐"이라면서도 "20%의 성공 가능성은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성공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설사 20%의 확률 안에 들어 석유·가스를 발견하더라도 매장량이 장밋빛 기대와 다를 수도 있다. 높은 수준의 성공률을 예견한 액트지오에서도 추정 매장량은 최대 140억배럴에서 최소 35억배럴로 4배까지 차이를 벌려놨다. 낮은 당첨 확률의 복권을 구입하면서 당첨금조차 보장 받기 어려운 셈이다.
정부 측에서 5000억원 수준으로 잡은 '로또 구입비'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정진욱 민주당 의원은 영일만 석유 시추 비용이 1조 2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다. 내년 예산안 승인에 거대 야당의 동의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유전 개발의 꿈은 점차 실현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