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 가려고 소 45마리를 모으던 청년은 지금 어디 있을까
2024.06.10 18:11
수정 : 2024.06.10 20:32기사원문
공기는 차다. 소가죽을 둘러쓴 일군의 부인과 아이들이 줄을 지어서 초원으로 들어간다. 물론 맨발이고, 모두 한 개씩 바구니나 통을 들었다. 소의 위장이나 염소 한 마리 통가죽을 말린 주머니들이다. 염소 가죽을 벗겨 말려서 네 발 끝을 잘 묶으면 완벽한 물통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염소를 도살할 때부터 계산된 절차가 있다. 간혹 말린 풀줄기로 촘촘하게 짠 바구니들도 사용한다. 벌집으로부터 얻은 밀랍을 바구니의 안팎으로 잘 바르면 훌륭한 물통이 된다. 밧줄 끝에 염소뼈들을 서너 개 달고 공중에서 돌리는 건장한 청년이 맨 앞줄의 저만치에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윙윙" 소리가 요란하다. 초원의 바닥을 기어다니는 독사들과 전갈들을 쫓기 위함이다. 그래야 초원 속에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안전통로가 확보된다. 한 집에서 하루에 5리터의 물은 길어야 살아간다. 마사이는 수천년 아니 수만년 동안 마사이 마라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건조지대의 자연이 주는 마실 물의 원천은 강이나 우물이 아니라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다.
19세기 말까지의 모습을 담은 고전적인 인류학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간추린 것인데, 이제 이 교과서도 수명을 다한 지 오래되었다. 마사이 마라에는 이슬로 목을 축이던 마사이가 없다. 대부분 나이로비나 몸바사 교외 빈민촌의 우글거리는 폐비닐과 깡통 집 골목에서, 불소 냄새 풀풀 풍기는 수돗물을 퍼나르는 급수차를 향해서, 깡통들의 줄을 지어서 기다린다. 깡통 골목 사이로 구불구불 흐르는 배수구의 악취 풍기는 폐수만이 흔한 물이 되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끝자락에서 초원의 생명수인 이슬은 신화로 증발해 버렸다.
1995년 마사이 촌락을 찾았던 나는 가까스로 마사이의 살림살이를 만날 수 있었다. 소똥과 진흙을 섞어서 지붕과 벽을 채운 나즈막한 움막 안에서는 오래된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재즈 음악을 발산한다. 지붕 높이가 나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한다. 벽체는 바싹 마른 딴딴한 관목 가지들을 가지런히 세워서 타원형으로 조성했고, 천장은 잔가지들을 좀 더 촘촘히 배열했다. 소똥을 물에 푼 걸쭉한 마감재로 벽면을 칠하여 반질거리는 효과를 낸다. 소똥벽 캔버스에는 별도 그리고 새들도 그렸다. 세 칸으로 나뉜 움막에는 소가죽이 바닥으로 깔렸고, 한쪽 구석에 불을 지피는 화덕에 새카맣게 그을은 낡은 알루미늄 주전자가 있고, 움막 안은 온통 그을음으로 반짝거릴 지경이다. 입구로부터 들어가면서 몸을 구부리고 왼쪽으로 몸을 돌려 곧바로 한 칸에 '완샷'으로 몸을 눕혀 본다. 새끼염소 한 마리가 그늘을 찾아서 움막 안으로 들어와 졸고 있다.
스물두 살의 사뮤엘 청년은 소를 키운다. 45마리의 소가 있어야 장가를 들 수 있다고. 자신은 20마리밖에 없기 때문에, 외삼촌이 지원해주면 신부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간 도시로 나가서 품팔이를 해야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나이로비로 나갔다가 품팔이와 구걸에 지쳐서 귀향했건만, 다시 나가야 할 생각을 하니 진저리가 났다. 결심하고, 처녀들이 아름다운 마사이 마라의 사바나로 돌아왔다.
사뮤엘은 가끔 초원으로 나가서 귀중한 풀을 채취한다. 사자가 싫어하는 냄새를 피우는 '치투라'라는 풀이다. 이 풀이 없으면 울타리 속에서 소를 키울 수가 없다. 야간에 사자가 습격하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에도 사자가 울타리 속에 들어와서 똥을 누고 간 흔적을 발견했다. 들판으로 나갈 때는 자신도 그 풀을 찧어서 몸에 액즙을 바른다. 냄새가 자신을 보호한다.
1960년대 말, 한국인 선교사 한 분이 들어와서 마사이 사람들을 구제한답시고 지하수 굴착기를 설치해 물 공급을 원활히 해주었다. 사바나의 들판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식수가 나오는 곳으로 모여들면서 커다란 마을이 형성되었고, 선교사의 교회는 성황을 이뤘다. 급기야 백인들의 습성인 샤워라는 것을 배운 마사이들이 몸을 씻기 시작했다. 어느 날 들에 나갔던 마사이 청년이 사자의 공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인물이 썩으면서 전염병이 발생했고, 문제의 본질이 인지된 때에는 돌이킬 수 없는 편리 중독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사회진화론이란 '선진적' 서구사상의 제품인 문명에 의해서 조작된 야만은 문명의 카니발리즘 대상일 뿐이고, 문명의 끝은 '혜택'이란 이름으로 장식된 허상이었다는 것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문명도 야만도 모두 황금과 권력에 야욕 찬 '백인종' 제국주의가 만든 소설이었다. 야만이란 먹이를 바닥낸 문명의 허구적 인류사가 이제 종말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그 끝에서 마사이 마라에 마사이는 사라졌고, 헐떡거리는 사자들이 문명의 울타리 속에서 눈요기로 달리는 장면이 21세기를 장식하는 인류문화의 모습이다. 문명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의 하나가 눈요기라는 편리임을 알았다. 스와힐리어로 사파리라는 이름의 편리도 결국은 눈요기를 위함이다. 문명질곡의 탈출구는 진정으로 편리를 내던지는 용기일 것이다.
염주 들고 산으로 들어간 후배의 뒤태가 존경스럽다. 문명이 앗아간 사람이 사는 모습, 그것이 공동체일 것이다. 자연에 순응된 공동체는 생태계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하였다. 아파트로 획일화되면서 사라진 공동체 회복만이 문명질곡의 타파를 보장한다. 편리란 무엇인가. 심오한 철학과 사상의 차원에서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그것을 어떻게 내던질 수 있을까. 인류가 살아남기 위하여 주어진 최후의 사명일지 모른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