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 땅 한가운데 포로수용소…생생한 휴전의 흔적
2024.06.17 18:27
수정 : 2024.06.18 13:46기사원문
올해는 6·25전쟁 발발 74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3년간 남과 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고, 미군을 비롯한 많은 유엔군과 북측의 소련 및 중공군이 참전했다. 특히 중공군의 참여는 심각하고 치열했다.
첫 지도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만든 '북진도'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에 의해 파죽지세로 남한이 잠식되면서 9월 15일 낙동강 전선으로 밀렸고, 이후 유엔군의 도움으로 북진을 시작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9월 30일에는 38선을 통과했다. 10월 19일에는 평양을 넘어 북진했고, 10월 24일에는 압록강변에 도달했다. 그 후 중공군이 참여해 인해전술로 국군과 유엔군이 밀리면서 현재의 휴전선으로 고정됐다. 이 지도에는 이런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북한의 '남침 계획도'(자료 재인용 김성보 외)도 중요한 지도의 하나다. 이 지도는 북한의 남한 선제 타격 계획을 보여준다. 러시아어 제목과 함께 '조선인민군 선제 타격 계획!'이라는 손글씨 제목을 달고 있다.
대략 삼척 위도까지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서부에 걸쳐서 1단계 공격을 잡고, 더 남쪽으로 호남과 영남으로의 대형 공격노선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은 1948년에 조선인민군을 창설했고, 이후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어 남침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이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했는지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여러 자료들이 나와 있지만 결국 속수무책으로 38선이 함락되고 3년간 전쟁을 치렀다.
우리를 도운 혈맹 에티오피아군의 전투상황도도 흥미롭다. 이 지도엔 강원도 철원군과 화천군 사이에 있는 적근산(1071m) 지역에서의 전투 모습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클리버 작전'으로 불리는 이 전투는 1951년 8월 9일에서 9월 14일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티오피아군 제1진인 강뉴(Kangnew)대대는 미군 7사단에 배속돼 중동부 전선 적근산과 삼현 부근, 단장의 능선 및 펀치볼 부근에서 활동했다.
1951년 8월 12일 적근산 전방 797고지 서북쪽 봉당덕리 부근에서 중공군과 에티오피아 참전군이 최초로 교전을 벌였다. 8월 15일 4시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중공군을 물리치고 18회의 정찰과 탐색전을 실시해 탁월한 전과를 거뒀다.
에티오피아는 3518명이 참전해 전사 121명, 부상 536명의 사상자를 냈다. 253전 253승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참전 대대명인 '강뉴'는 '혼란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라 한다. 에티오피아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56년까지 한국의 전후 복구 사업과 고아원 운영 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장진호 전투상황도'(자료 재인용 이용규)는 1950년 12월 장진호전투에서 중공군에 포위된 미국 해병대들이 이곳을 힘겹게 벗어나는 군사작전도의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 해병 1사단은 유엔군 북진 정책에 맞춰 원산에 상륙해 장진호로 북진했다. 11월 27일 이곳에 잠복한 중공군 9병단이 포위 공격을 감행했고, 결국 황초령을 넘어서 12월 11일 흥남에 무사히 도착한다.
황초령은 함경산맥 능선에 속한 고개로 개마고원과 동해안 지역을 나누는 중요한 고개로 장진호 호수와 발전소에 인접해 있다. 치열한 전투로 잘 알려진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에서 12월 13일까지 치러졌다.
'판문점 포로수용소 지도'는 휴전이 이뤄지면서 판문점 일대의 일시적 시설을 보여준다(자료 재인용 임종업). 여기에는 남북 간 담판이 이뤄진 판문점과 유엔군 사령부, 인도군 캠프와 함께 거대한 임시 포로수용소를 담고 있는 일시적이고도 희귀한 지도이다.
지도 중앙에 크게 표시된 지역은 1953년 9월 10일부터 1954년 2월 18일까지 포로 2만8000명이 5개월간 거주한 공간이었고, 지금은 완전히 철거된 시설들로 판문점 바로 아래 도라산 지역의 개활지에 만들어졌다. 이 지도는 6·25전쟁이 휴전에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지도는 현재 파주시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