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쿠데타 3시간 만에 종료, 군부 지도자 체포
2024.06.27 10:36
수정 : 2024.06.27 10:4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내년에 대선을 앞두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남미 국가 볼리비아에서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약 3시간 만에 중단됐다. 이번 쿠데타의 원인은 표면적으로 현 정부 및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군부의 불만으로 알려졌다.
약 3시간 만에 끝난 쿠데타
미국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볼리비아 육군의 후안 호세 수니가 장군은 26일 오후 3시 무렵(현지시간) 전차와 장갑차를 포함한 휘하 장병들을 수도 라파스의 무리요 광장에 집결시켰다.
수니가는 국회 및 대통령궁이 위치한 무리요 광장을 통제한 뒤 현장에 모여든 취재진에게 "천연가스 수출이 고갈되면서 중앙은행 외환보유고가 고갈되고 볼리비아 화폐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등 경기 침체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면 분명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우리나라는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지속될 수 없다"며 "파괴를 멈추고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고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멈춰라"라고 주장했다.
수니가는 "수년 동안 소위 엘리트 집단이 국가를 장악하고 조국을 붕괴시켰다"며 "우리 군은 민주주의 체제를 재구성해 국가를 일부 소수의 것이 아닌 진정한 국민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수니가의 군대는 오후 3시 50분에 장갑차를 이용해 대통령궁 문을 부순 뒤 내부로 진입했다.
볼리비아의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수니가와 직접 대면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아르세는 수니가에게 "군 통수권자로서 이런 불복종을 용납할 수 없으니 철군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촬영 영상에 의하면 아르세와 수니가의 대화 당시 신원을 알 수 없는 주변 인물이 수니가에게 "그만 물러나라, 이래선 안 된다"고 외치기도 했다. 수니가는 대면 당시 아르세에게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아르세는 수니가와 짧은 대화 이후 곧바로 대국민 연설을 진행하고 "볼리비아가 군의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아르세는 즉시 육군과 해군, 공군 참모총장을 교체했으며 호세 윌슨 산체스 신임 육군 참모총장은 쿠데타 가담 장병들에게 부대 복귀를 명령했다. 쿠데타에 가담했던 병사들은 오후 6시 무렵 광장에서 철수했다. 아르세는 병사들이 물러가자 대통령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국민들에게 감사하다. 민주주의를 유지하자”고 말했다. 수니가는 이날 저녁 막사에서 연설 중에 경찰에게 체포됐다.
아르세 정부와 갈등...국내외 반발로 쿠데타 포기
수니가가 쿠데타를 포기한 이유는 국내외 극심한 반발 때문으로 추정된다. 라파스 시민들은 쿠데타 소식이 알려지자 무리요 광장에 모여 수니가와 군부를 비난했다. 이에 쿠데타 가담 병사들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대법원과 경찰, 소방 노조, 시민사회단체 모두 군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볼리비아 최대 노동조합 지도부는 정부를 방어하기 위해 라파스의 사회단체와 노동단체에 대해 무기한 파업을 선언, 국민적 저항을 선언했다.
해외 지도자들도 수니가를 지지하지 않았다. 볼리비아와 이웃한 칠레의 가브리엘 보릭 대통령은 "우리는 이번 쿠데타 시도를 규탄하며 기관들이 제 기능을 다하고 헌법과 법률이 존중될 것을 요구한다"며 아르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남미·카리브해국가공동체(CELAC) 임시 의장을 맡고 있는 시오마라 카스트로 온두라스 대통령도 볼리비아의 상황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유럽연합(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EU는 볼리비아의 헌법 질서를 깨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려는 모든 시도를 비난한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번 쿠데타의 원인으로 정부와 군부의 갈등 및 경제난을 언급했다. 볼리비아에서는 지난 2006년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당시 취임한 에보 모랄레스는 강력한 좌파 정책을 내세웠으며 지난 2019년 4선에 도전하다 부정선거 의혹에 휘말려 퇴진했다. 모랄레스의 뒤를 이은 아르세는 모랄레스 정부 당시 경제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아르세와 모랄레스는 좌파 정당 사회주의운동(MAS) 소속으로 정치적 동맹이었지만 최근 갈라섰다. 약 14년 동안 집권했던 모랄레스는 2025년 대선에 다시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올해 1월 헌법재판소의 임기 제한 판결로 출마가 좌절됐다. 이에 모랄레스는 “우파로 기운 아르세 정부가 계획한 모략”이라고 반발했다. 현지에서는 모랄레스 출마를 원하는 지지자들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현지 매체 엘데베르에 따르면 수니가는 모랄레스의 귀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최근 "군대는 국민의 무장한 날개인 만큼, 모랄레스를 막기 위한 적법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모랄레스 진영에서는 25일 수니가가 군인 신분으로 정치적 행위를 했다며 고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부 매체들은 모랄레스의 복귀를 걱정하는 수니가가 최근 아르세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행동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놨다. 수니가는 26일 체포 당시 아르세에게 '쿠데타 지시'를 받았다며 아르세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쿠데타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AP는 아르세 정부 출범 이후 극심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을 언급하며 이러한 경제난이 쿠데타의 구실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