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익장'이라는 말의 의미
2024.06.30 19:38
수정 : 2024.07.05 18:22기사원문
'노익장'이라는 말이 있다. 늙을 노(老), 더할 익(益), 씩씩할 장(壯) 자를 써서,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청년 못지않게 힘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할 때 흔히 이 말을 쓴다.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온다. 시골에서 소나 키우던 마원이 광무제의 부름을 받고 벼슬길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62세 때의 일이다. 복파장군(伏波將軍)에 봉해진 그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흉노를 격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를 본 광무제가 "저 노인 참으로 대단하구나"라고 감탄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장부가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더욱 굳세야 하고, 늙어서도 더욱 씩씩해야 합니다(窮當益堅 老當益壯)."
#2. '꽃보다 할배' 신구(87)의 열정도 마원에 버금간다. 곧 미수(米壽·88세)를 맞는 신구는 최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올해 83세인 박근형을 비롯해 81세인 박정자, 63세 막내 김학철과 함께였다. 신구가 미치광이 에스트라공 역을 맡고 박근형이 블라디미르, 김학철이 포조, 박정자가 럭키 역을 맡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기경력 도합 228년에 이르는 이들의 노익장 덕분인지 국립극장에서 열린 50회 공연은 전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신구는 병마를 이겨내고 무대에 오른 일화로도 유명하다. 지난 2022년 급성 심부전으로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잠정 하차했던 그는 심장에 박동기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고 1년 뒤 다시 같은 무대에 오르는 투지를 보였다. "힘을 남겨두고 죽을 바에는 여기에서 모든 걸 다 쏟아내고 죽자는 마음이었다"면서다. 그러면서 그는 또 "아직도 숨쉬고 걸어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연극)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해 많은 관객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냈다.
#3.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있다. 제나라 환공이 어느 해 봄 군사를 이끌고 고죽국(孤竹國) 정벌에 나섰다가 길을 잃었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재상 관중이 말했다. "이럴 땐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봄 직합니다." 하여 관중이 풀어놓은 늙은 말을 뒤따르게 하니 진짜로 얼마 안 가서 큰 길이 나타났다. '한비자(韓非子)' 설림편(說林篇)에 나오는 고사다.
한데 노마지지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륜이 깊고 경험이 많을수록 더 능숙하고 옳은 판단을 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겠지만 이를 갈고닦지 않으면 돌처럼 굳어지게 마련이어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장수박사 박상철의 거룩하게 늙는 법'의 한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노화 전문가인 박상철 전 서울대 의대 교수가 지난해 파이낸셜뉴스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인데, 거기엔 나이 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생활강령이 나온다. 즉 하자(Do it·行之), 주자(Give it·與之), 배우자(Prepare it·習之)다. 나이 들었다고 망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무엇이든 해보고, 오래 살아온 만큼 누적되어 쌓인 경험과 살림살이는 나누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습득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이는 나이 들어가는 이들은 물론 초고령화 사회에 직면한 정책입안자들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