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차 지나가고 손 흔들면 안된다
2024.07.01 18:16
수정 : 2024.07.01 19:06기사원문
AI 시대 '답을 찾는 공부'를 하는 시대는 갔고 '질문을 찾는 공부'를 하는 시대다. 질문을 바꾸면 정답이 나오고 허접한 질문을 하면 허접한 답이 나온다. 답은 AI가 찾아주는 것이고 인간은 질문만 하면 된다. '암기력 천재'보다는 AI에게 기발한 질문을 잘 하는 '질문 천재'가 진짜 천재다. 답을 아는 자가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법을 아는 자가 고수다. 경험이 독이 되고 상상력이 힘이 되는 시대다. 날밤 새며 연구실에 처박힌 연구자 100명보다 늦잠꾸러기지만 상상력 좋은 괴팍한 천재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왔다. 지금까지는 일에 집중한 시간의 정도가 선배, 상급자, 대가를 만들었지만 이젠 알파고 같은 AI가 모든 선배, 상급자, 대가들의 노하우를 검색해 순식간에 답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젠 기존의 것과 다른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독창성이 무기인 시대다.
'슈퍼개미'가 아니라 이런 AI의 힘을 무한대로 이용하는 '슈퍼개인'의 시대다. AI 시대에는 농업혁명, 공업혁명, 정보혁명시대에서 일하는 방식과 돈 버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대변혁이 온 것이다. 그래서 통째로 변하지 않으면 망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AI 시대의 아킬레스건이 반도체다. 쳇GPT건 엔비디아건 간에 대만의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와 한국의 HBM 반도체가 없으면 꽝이다. 한국은 운 좋게 AI 시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품었다. 반도체산업에서 모 전자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얘기했던 초격차(超格差) 얘기를 많이 한다. 초격차는 적과 초접전(超接戰)을 벌이는 상황에서 2등이 아예 1등이 되고자 하는 의지마저 꺾어 놓을 만큼 큰 격차를 벌려 놓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초격차는 돈과 인재 그리고 정책의 삼박자가 맞아야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초계속(超繼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을 먹여살리는 달러박스인 반도체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수출이건 내수건 간에 힘들어진다.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없다. 초격차는 적어도 10년간 칼 한자루만 간다는 심정으로 집중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얻어진다.
한국에 있어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은 발등의 불이다. 지금 미중의 기술전쟁 속에서 한국을 지켜주는 것은 반도체 기술이고, 한국의 성장을 지탱하고 무역흑자를 가져오는 최대 품목도 반도체다. 지금 반도체는 민간의 수익사업이 아니라 미, 중, 일, 유럽 정부가 안보산업으로 격상시킨 국가 방위산업이고 국가대항전이다. 한국 반도체의 수명이 끝나는 순간 한국의 성장도, 미중 외교에서 한국의 입지도 모두 끝날 수밖에 없다.
이공계 인재가 의대로만 몰리면 4년 후에 당장 미, 중, 일, 대만, 유럽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반도체산업에 문제가 생기고 반도체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에 치명타로 올 수 밖에 없다. AI 시대에 핵심인 반도체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관심도 없고 집안싸움에만 매몰된 한국 정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반도체 인재 양성도 발등에 불인데 인력 양성을 해야 한다고 말만 하고 실행은 없는 정부도 걱정이다.
정당끼리 입장 차이로 박 터지게 싸울 일도 있지만 국익을 위해선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일도 있다. 반도체지원, 차 지나가고 손 흔들면 안 된다. AI 시대, 반도체산업 육성과 인력 확보는 초당적으로 범정부적으로 최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동네 골목대장의 눈이 아닌 하늘을 나는 매의 눈으로 정세를 읽고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반도체산업을 두어야 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