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화 이사 가나…현실이 된 '성범죄자 폭탄돌리기'

      2024.07.02 06:12   수정 : 2024.07.02 06:41기사원문

[편집자주] '연쇄성범죄'라는 잔혹한 범죄 이력이 있는 자가 내 주변, 내 가족 곁에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당사자에게 퇴거 요청을 하고 싶지만, 이미 '죗값'을 치르고 나왔다며 거부 하거나 오히려 권리 침해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하자는 취지의 '한국형 제시카 법'은 위헌 우려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제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3회에 걸쳐 해법을 모색해봤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진짜 폭탄돌리기 아닙니까!"

여성 10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박병화의 거주지가 바뀔 가능성이 있어, 그의 이주 예정지로 알려진 건물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입주민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일 박병화가 거주하고 있는 경기 수원시 인계동 S 타워와 인근에 있는, 'OO프라자 A오피스텔' 입주자들에 따르면 박병화가 거주하고 있는 S 타워 건물관리인은 최근 A오피스텔 건물관리대리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내용증명 요지는 '박병화를 A 오피스텔로 전입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7월 1일까지 관련 회신이 없을 시 박병화를 4년간 A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것에 이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다'이다.

S 타워 관리인은 박병화에게 A 오피스텔로 이사해 4년간 거주할 경우 그에게 2년 치 월세를 지원하겠다는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인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이미 박병화와 접촉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6월 11일 본지가 보도한 ( [단독]연쇄성범죄자 박병화 카톡 공개…퇴거 문제 급물살) 우려가 현실로 일어난 셈이다.


국회 문턱 넘지 못한 '한국형 제시카법'


연쇄성범죄자 박병화 거주지를 둘러싼 해결 방법은 사실 이미 마련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법무부는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입법 추진했다.

흔히 '한국형 제시카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2005년 플로리다주에서 성범죄자에게 강간 살해된 피해자 제시카 런스퍼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해당 법은 12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게 출소 후 평생 전자발찌 부착 및 학교·공원 주변 최대 600m 이내 거주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학교와 공원을 기준으로 주변에 거주를 못하도록 하는 '미국 제시카법'과 달리 '한국형 제시카법'은 고위험 성범죄자들의 거주지를 국가와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지정한다. 미국과 비교해 국토가 좁고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인구밀집도가 높은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법안의 적용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자, 3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전자 감독 대상자 중 부착 원인 범죄로 10년 이상의 선고형을 받은 자 등이다. 아울러 법무부는 성범죄자 재범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성충동 약물치료 확대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 같은 법안을 추진한 배경으로는 아동 성범죄자의 높은 재범률과 연관이 있다. 2022년 1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주요 범죄의 실태 및 동향 자료 구축 성폭력범죄'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5년간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중 26.8%가 재범이었다. 13~18세 대상 성범죄자 중 재범 비율은 34.1%에 달했다. 또 법무부의 성범죄백서(2020) 통계에도 재등록 성범죄자 중 62.4%가 1차 범죄 뒤 3년 안에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해당 법은 수형 생활로 징벌을 받은 자에 대한 이중 처벌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뺏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비판도 있다. 또 지정 지역 주민들의 반발 문제도 있다. 이런 각종 논란으로 이 법은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기존 제도 잘 활용" vs "재범률 떨어뜨릴 수 있어"


이렇게 '한국형 제시카법'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하는 가운데, 법 효용성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의 관점도 다르다. 지난해 '법무사' 3월호에 관련 법 시행에 대한 우려를 기고한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범죄자들을 특정 지역에 거주하게 만들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면적이 넓고 인구밀집도가 높은 외국의 사례(플로리다 등)를 상황이 정반대인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인구밀집지역인 서울 등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성범죄가 거주할 수 없다면 학교나 보육시절이 부족하거나 낙후된 지역으로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내몰리게 된다. 이들의 재범 위험성이 크다면, 또 그 위험성을 다른 지역으로 전가하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대안으로 "전담 보호관찰관이 대상자에 대해 24시간 이동 경로 집중 추적, 음란물을 지니지 않도록 주의, 심리치료 실시 등 집중관리 등 이런 기존 제도를 빈틈 없이 잘 활용해서 시민 안전을 지켜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다른 의견도 있다. 관련 법 시행으로 성범죄자들의 재범을 막을 수 있다는 견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10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제시카법과 관련해) 재범 억제에 현저히 도움이 될 거다. 이미 전자발찌를 차고도 이게 사실 지리적인 추적만 하다 보니까 성범죄 재범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분들이 과거에 거의 동종 전과력을 다수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입증이 됐다. 그래서 지금 전자감독, 재범률을 거의 6분의 1 정도 감소시키는데 아마 야간의 외출 제한 등을 추가로 적용하면 재범률을 더 떨어뜨릴 수 있을 거다. 그런 차원에서 찬성한다"고 밝혔다.

"도대체 박병화 어떻게 할거냐" 갈등 깊어지는 주민들



'한국형 제시카법'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하는 사이, 박병화가 거주하고 있는 건물 입주민들의 불안과 갈등은 극심해지고 있다.

현재 박병화가 거주하고 있는 S 타워의 한 입주민은 "박병화가 이사를 가는 곳이 멀지는 않지만, 일단 여기를 떠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그가 입주할 수도 있는 A오피스텔 입주민은 "바로 옆 건물로 이사 온다는 게 이곳(인계동 안전을 위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제시카법) 관련 법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S 타워와 A 오피스텔은 시청역사거리 한 코너에 나란히 인접해 있다.

한편 S 타워 관리인은 박병화 거주지 논란에 대해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용증명서에서 "화성시·수원시가 못하고, 대한민국도 안 하는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 문제의 각자도생 해법 중 한 가지"라고 말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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