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운명공동체와 한국의 대나무외교

      2024.07.03 18:30   수정 : 2024.07.03 19:06기사원문
지난 6월 28일 필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평화공존 5항원칙 발표 70주년 대회에 다녀왔다. 대회의 대주제는 '평화공존 5항원칙에서 인류운명공동체까지'였다. 5항원칙이란 영토 보전과 주권의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호혜평등, 평화적 공존을 말한다.

평화공존 5항원칙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는 가운데 핵심은 인류운명공동체의 부각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40여분간 연설하였는데 중국 외교의 기조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외교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중국 외교의 적극성에 주목하게 된다. 평화공존 5항원칙은 70년 전 당시 중국의 대외정책 기조로서 미소 양 진영의 압박 속에 자기 결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적 제안이었다. 70년이 지난 지금의 중국은 상승한 국력을 바탕으로 자기 국익을 확보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기 영향력을 관철하고자 한다. 평화공존을 주장할 당시보다 현재 중국 외교는 더 강하고 공세적이다.

중국은 외교적 자신감을 보이고, 미래비전을 제시하려 한다. 중국 역사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중국적 가치에 자부심이 강한 시 주석의 성향도 중국 외교의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 같은 서방의 가치영역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운명공동체를 내세우고 있다. 인류 미래의 큰 그림을 통해 국제사회에 자국의 외교신념을 적극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인류운명공동체의 이론적 완성도를 높이고 외교적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인류운명공동체의 '운명'을 영어로 표기할 때 초기엔 common destiny를 썼으나 이후엔 shared future로 바꾸었다. 국제사회의 '운명' 용어에 대한 거부감과 배경 의도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베트남과의 관계를 '운명 공동체' 대신 '미래 공동체'로 재정립한 것처럼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단, 중국이 넘어야 할 도전들도 적지 않다. 중국적 특색에 세계적 특색을 더해야만 좀 더 보편성을 띨 것이다. 세계 경제 초대국으로서 꼭 호혜평등적으로만 이익을 나누려 한다면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의 지지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것이다. 인류운명공동체는 현재 주로 경제사회 등 연성 협력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안보군사적 경성 영역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더 관건이다. 시 주석의 연설 중에 국제분쟁 발생 시 중국지혜와 중국방안 같은 중국적 특색이 유용할 것이라는 발언 대목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중국의 힘이 커질 때마다 세계 평화에 대한 희망도 커진다고 했다. 사우디·이란 수교에 실제 중재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위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한반도, 이란,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문제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다.

최근 한중관계에 부분적 변화 조짐이 있어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5월 한국에서 열렸던 한중일 3국정상회의는 한국 외교의 중국에 대한 전술적 변화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포함한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적 사고를 품게 했다. 그러나 약간 속도를 내려던 한중관계가 북러 포괄적전략동반자관계 체결로 인해 멈추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게 된다. 한국 국내여론 압박으로 인해 오는 7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나토, 또 동 기간 중에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들이 영향을 받을 경우 당구의 스리쿠션처럼 한중관계에 역풍을 줄 수 있다.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강화되고 북러 군사협력이 심화되는 현 시점에서 중국의 입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전엔 한국과 중국이 북방삼각, 남방삼각 소삼자 그루핑에 적극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역내 3대 3 대결구도는 자제되었다. 그런데 북러 조약 체결로 한국 국내에서는 한반도 안보지형이 바뀌었고 중국을 북방삼각으로 보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중국의 평화공존 5항원칙을 계승한 인류운명공동체가 한반도와 한중관계에 어떤 '운명적' 영향을 미칠지, 한국식 '대나무 외교'가 작동할지 희망 반 걱정 반이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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