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지나면 불난리… 쪽방촌 시름 깊어진다

      2024.07.03 18:36   수정 : 2024.07.03 18:36기사원문
"여름마다 배수관이 막혀서 집까지 물이 들어와요."

3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에서 만난 김모씨(70)는 장마철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김씨는 "비가 많이 오면 사람들이 바닥에 버린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쓸려 내려와 골목 배수관이 막혀버린다. 노인이나 여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가운데 쪽방촌은 침수 걱정으로 시름하고 있다. 배수관에 쓰레기 등이 쌓이면서 매년 침수 피해를 겪는다고 했다.
제때 관리가 되지 않아 물난리를 겪는 셈이다.

■배수관 막혀 매년 수해

이날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 초입의 한 건물은 입구부터 심한 악취가 풍겼다. 건물 입구 앞 하수구에는 담배꽁초와 포장비닐 등이 어지럽게 차 있고 공중에는 파리와 날파리 수십마리가 들끓었다. 나무와 시멘트로 마감된 벽은 오랜 세월 물에 부식된 모습이었다.

김씨는 "매년 1층 방까지 물이 들어찬다"며 "동네 남자들이 물을 퍼내면 청소하지만 벌레가 들끓고 악취가 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철거될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몇 년 전부터 구청에서 배수관 퍼내는 작업을 안 해준다"며 "재개발이 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기약이 없다. 사는 사람들은 계속 피해를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10년째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행자씨(83)는 지난 2022년 물난리를 겪었다. 김씨는 "비가 쏟아지더니 하수도가 역류해 방에 종아리까지 물이 들어찼다. 가전제품을 다 버렸다"며 "구청에 도배해 달라고 했는데 안 해준다. 짐이 많아서 그냥 가구로 가려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쪽방촌 주민들은 스스로 물난리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날도 연탄창고 지붕을 청테이프로 보수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이모씨(65)는 "연탄을 나라에서 주니까 추위 걱정은 없지만 비를 맞으면 큰일"이라며 "집들이 최소 50년 이상 됐기 때문에 비를 맞으면 부식된다. 물받이가 설치돼 있긴 하지만 비가 다 새서 구청에 새로 설치해 달라고 했지만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빗물을 막을 수 있도록 모래주머니를 설치하는 등 조치하고 빗물받이 준설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난리 지나면 화재가 걱정

장마철 물난리를 피해도 '화재'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60년 이상 된 건물이 대부분이고 목조주택도 많아 한번 불이 나면 피해가 커지고 누전 우려도 있다는 것이 쪽방촌 주민들의 설명이다.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에서는 지난 3월 20일 가스버너에서 시작된 불로 3층에 있던 방 6개 모두 피해를 입었다. 화재로 60대 남성 1명이 사망했다. 다른 방에 있던 92세 노인은 3도 화상을 입은 채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고 한달여 뒤 결국 숨졌다. 이 건물은 보수공사를 거쳐 지난달부터 주민들이 다시 살기 시작했다. 여전히 취약한 상황은 그대로다. 이곳에 사는 강영모씨(72)는 "사고 전에는 화재감지기가 있었는데 돌아와 보니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설치해 줄지 기약이 없다"며 "화재 사고가 나기 전에도 실험해보니 감지기는 작동하지 않았었다. 제대로 된 제품을 설치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강씨에 따르면 지자체는 간이 소화기를 비치해줬지만 2019년 생산된 제품이었다. 이미 보증기간 2년이 지난 상태다.

남대문 옆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와 시멘트로 쌓은 집에 낡은 전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고 목조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번 불이 붙으면 쉽게 불이 옮겨붙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민단체 동자동 사랑방에서 일하는 차제설씨(66)는 "오래된 동네여서 불이 나면 너무 위험하다.
소방차가 들어오기도 힘들다"며 "공공 재개발로 주거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자체에서는 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지자체 관계자는 "불이 난 건물은 서울시에서 시설 보강 예산을 내려줘야 한다"며 "여기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배관이 들어가야 해서 건물 구조를 많이 바꿔야 하는데, 오래된 건물은 사실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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