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다치고 사망해도 절반이 '집유'…5년간 실형 8.8% 불과

      2024.07.04 16:07   수정 : 2024.07.04 16:1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케 하는 행위 등으로 인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도 피고인이 실형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 10명 중 8명은 집행유예나 재산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돌진사고의 경우 운전자 차모씨도 교통사고처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운전자 과실임이 증명될 경우 최대 금고 5년형의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통사고법 위반 10명 중 8명은 집유·재산형
4일 파이낸셜뉴스가 대법원 사법연감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18~2022년 교통사고처리법 위반으로 1심 선고가 내려진 사건은 4만5723건에 달했다.
이 중 집행유예가 2만4072건(52.6%)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많은 것은 벌금 등 재산형으로 1만3172건(28.8%)이었다. 실형 선고는 4007건(8.8%)에 불과했다.

교통사고처리법은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양형 기준에 따라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더 낮을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교통사고 치사 사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징역 8월~징역 2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중상해가 발생하거나 위법성이 중한 경우 또는 난폭운전의 경우 등을 적용하면 징역 1년~징역 3년을 권고하고 있다. 반면 피해 회복, 진지한 반성, 자동차종합보험 가입 등은 감경 사유로 반영될 수 있다.

실제 지난 2021년 전남 여수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들과 신호대기 중인 차량을 잇따라 들이받아 5명을 숨지게 하고 1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0만원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피고인이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이 양형에 반영됐다.

다만 차씨가 주장하는 급발진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처벌이 예상되는 분위기다. 방민우 법무법인 한일 변호사는 "급발진이 인정되더라도 역주행 등의 과실이 있기 때문에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만큼 최대 형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상적경합'으로 중한 처벌 못해
법조계 일각에선 각각의 죄에 대한 형량을 합산해 처벌하는 병과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 '상상적경합' 관계로 판단, 적용되는 혐의 중 가장 중한 죄의 형량을 선택해 처벌한다.

미국의 경우 하나의 행위로 여러 명이 사망할 경우 여러 개의 죄로 인정돼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예컨대 미국 텍사스주 법원은 SUV 차량이 버스 정류장에 돌진해 8명이 사망한 사건을 두고 운전자에게 징역 60년을 선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는 '다중 인명피해 범죄의 경합범 가중에 관한 특례법'이 추진됐지만 무산된 바 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입장문을 통해 "미국처럼 병과주의를 채택했다면 9명의 사망자를 낸 운전자에게 과실임이 밝혀질 경우 최대 징역 45년형을 내려질 수도 있다"면서 "병과주의가 가해자의 교화가능성을 낮추고 비례의 원칙 위반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사망자 수에 비해 가해자 형량이 너무 낮을 것으로 예상돼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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