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히면 또 뚫는다”...신의료기술평가제도 빈틈 악용, 줄줄 새는 보험금

      2024.07.10 10:04   수정 : 2024.07.10 10:0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정부 관리체계 부재로 일부 의료기관과 소비자의 과잉의료 행위가 이어지고, 지난해 비급여 지급보험금이 8조원을 넘어서면서 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 가운데 허술한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새로운 비급여 누수 요인으로 떠올랐다.

10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의료계가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의 빈틈을 악용해 과잉의료를 벌이면서 실손보험금 누수가 지속되고 있다.

통상 신의료기술은 신의료기술평가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요건에 맞게 사용돼야 하는데, 복지부 고시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의료기관에서 해당 신의료기술을 오·남용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레이저를 이용한 손발톱진균증 치료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치료술 관련 고시를 살펴보면 치료술 사용 대상이 '경구 항진균제 복용이 불가능한 경우'로 모호한데, 이에 단순히 환자가 항진균제 복용을 거부하더라도 '복용이 불가능한 경우'로 판단해 약물치료를 건너뛰고 바로 치료술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환자 A씨가 총 177회의 레이저 치료를 받아 약 3000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복지부가 고시 범위를 벗어나 경구항진균제 복용과 레이저 치료를 병행해 진료한 서울 강북 소재 B의원에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사각지대를 노리고 비급여 실손보험금을 지급받은 사례가 다수 포착됐다.

무릎 골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신의료기술인 '무릎주사(무릎 골관절염에 대한 골수흡인농축물 관절강내 주사)' 또한 고시의 안전성·유효성 평가결과에 '심각한 합병증 및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고, 보고된 이상반응은 경미한 수준'이라고만 명시돼 있어 구체적인 치료기준이 모호한 상태다.


무릎주사의 경우 통상 통원시술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보장한도가 큰 실손입원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입원을 권유하는 사례도 상당하다. 통상 실손보험의 통원한도는 회당 20만원이나, 입원은 최대 5000만원으로 보장한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서울 강남 소재 C병원은 지난해 10월 통원 치료로 해당 신의료기술을 시행하다가 한 달만에 입원치료로 변경하기도 했다.

시행주체(진료과목 등)가 고시 대상 항목으로 구체화돼 있지 않아 비전문의가 치료를 실시하는 사례도 빈번한데, 서울 강서구 소재 D한방병원도 가정의학과 의사를 채용해 무릎주사 치료를 실시한 바 있다. 실제로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보건복지부령) 제4조에 따르면 '해당 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평가결과 △사용기간 △사용목적 △사용대상 △시술방법 등을 고시해야 한다'고만 돼 있으며 시행주체에 대한 언급은 없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범정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입을 모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시행주체 등이 명확히 특정되는 등 복지부 고시가 변경돼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신의료기술 자체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상태이나 모호한 복지부 고시 탓에 꼭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닌, 의료기술 오남용 사례가 잦아 안전성·유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진료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 관계자 역시 "금융당국으로서도 이제 (실손보험금 누수 대응방안 마련이) 한계"라며 "금융당국뿐 아니라 보건당국, 범정부적으로 비급여에 대한 관리를 고민할 때"라고 전했다.

현재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는 의료기술에 대해 안전성·유효성 등을 재검증하는 '의료기술 재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권고 결과를 따르지 않더라도 강제력 또는 제재·처벌이 부재한 상태다. 이에 의료기술 재평가 결과 문제가 있는 비급여의 퇴출 프로세스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복지부 또한 지난 2월 제2차 건보종합계획에서 비급여 퇴출기전 마련 등 비급여 관리강화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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