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가던 출근길인데 불안… 시청역 참사가 남긴 트라우마

      2024.07.10 18:41   수정 : 2024.07.10 18:41기사원문
지난 1일 오후 9시 27분께 서울 중구 시청역 7번 출구 인근 교차로에서 역주행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한 지 9일이 지났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고 이후 시민들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과거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해왔던 더는 하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인근 직장인의 경우 사고 현장을 가지 못한다고 했다. 오래 걸리더라도 사고 현장을 피해 둘러 간다고 했다. 회식하게 되면 인도와 인접한 음식점은 맛집이라도 피하게 된다고 한다. 가해 차량 운전자가 고령이라는 점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운전면허증 반납을 생각하는 고령층도 있었다.

■"조심한다고 될까"

10일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 인근에 만난 한겨레씨(32)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현장을 본다고 밝혔다.
인근에 사무실을 얻어 사업을 하는 한씨에게 사고 현장은 평소 출근길이었다. 한씨는 "사고 소식을 접한 뒤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간다"며 "내 주변의 누군가가 돌아가신 것 같은 상실감이 들었다. 불의의 사고라 친구가 당할 수도 있고 동료가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상의 변화는 여러 시민이 겪고 있었다.

현장 인근으로 출퇴근하는 김모씨(35)는 사고 이후 남편의 전화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자주 전화해 별일 없는지 묻고 조심하라고 한다"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전봇대 뒤에 서 혹시라도 차가 들이닥치면 조금이라도 피하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 대부분이 직장인이라는 점에서 회식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시민도 있었다.

A씨는 "사고 현장에서 회식이나 약속을 잡은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못 가겠다"며 "인터넷에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봤더니 저녁 먹다가 담배 등의 이유로 잠시 나와 있던 사람들 주변으로 차량이 돌진하던데 충격적이었다. 도로변 식당은 피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주의를 기울여도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불안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진모씨(34)는 "걸어가면서 핸드폰을 보지 않고 찻길을 건널 때 주변을 더 살피고 조심히 걷게 됐다"며 "이곳이 아니라 어디를 걷더라도 사고는 날 수 있는 것이고 갑자기 차가 오는데 어떻게 피해 가나"고 토로했다.

■"운전면허를 반납해야겠다"

고령층의 경우 이번 사고의 여파로 면허증을 반납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해 차량 운전자가 고령층으로 알려지면서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유였다.

문형선씨(76)는 "오는 12월말일에 1종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말소시킬까 생각 중"이라며 "최근 60~70대 운전자의 사고 뉴스를 많이 봤다. 사람이 나이 먹으면 모든 행동이 둔해지긴 하니 불안하다"고 했다.

김모씨(74)는 "나이를 먹으니 운전하기 싫어서 요즘에는 대중교통만 이용하고 있다"며 "이번 사고를 보니 이참에 운전면허를 반납할 생각"이라고 했다.

젊은층에서도 운전 실수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박모씨(33)는 "최근에 실수로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은 적이 있다.
다행히 기어가 주차에 있어서 사고는 나지 않았다"며 "나이가 문제가 아니고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어 운전이 무섭기도 하다. 그렇다고 운전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관련해 하지현 건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고통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게 내게 일어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두려움은 정상적인 반응"이라며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증상화' 하기보다 '굉장히 우발적인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구나', '희생된 분들은 참 안타깝다' 정도로 생각하고 나의 평소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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