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로펌 압수수색에 의뢰인은 불안…"비밀유지권 입법 절실"

      2024.07.11 15:58   수정 : 2024.07.11 15:5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로펌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잇따르자 의뢰인 민감정보 보호에 대한 법조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국내에도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선 ACP를 도입해 의뢰인과 변호사간 서면교신 등에 대해 수사기관이 압수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거나, 압수 대상물에서도 일부 보호대상물을 지정해 제외토록 하고 있다.



잇따르는 압색..."거부 어려워"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9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현직 경찰 수사관이 이 법무법인이 수사정보를 유출했다는 제보를 받고 강제수사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에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 SM엔터테인먼트 주식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2022년 12월에는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를 대리했던 법무법인 태평양이 압수수색을 받는 등 대형 로펌에 대한 강제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법조계에선 강제수사 과정에서 의뢰인들의 민감 정보까지 넘어갈 우려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변호사가 잘못하면 로펌도 압수수색도 하고 처벌도 할 수 있겠지만, 전혀 관계없는 의뢰인들의 정보가 완전히 보호될 지는 의문”이라며 "일단 수사기관이 방대한 자료를 가져가는 것만으로 의뢰인들이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요즘 대부분의 자료는 디지털 파일인데, 압수수색 영장에 1~4번 물건을 가져가라고 적혀있어도, 실무적으로는 수사기관이 1~10번까지 가져가서 나머지를 돌려주는 식"이라며 “수사 관행 등 실무도 함께 변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제도에서도 변호사가 압수수색을 거부할 권리는 일정 부분 보장된다. 형사소송법 제112조는 변호사, 변리사 등에 대해 타인의 비밀에 관한 ‘물건’에 대해 압수를 거부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리 보장이 어렵다는게 일선 변호사들의 의견이다. 데이터화 된 사건 정보나 서류 등이 법에서 규정한 ‘물건’의 범위에 해당하는지 모호한 부분이 있고, 실무적으로도 압수수색 절차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법정책연구원은 ‘변호사-의뢰인 간 의사 교환의 비밀보장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형사소송법이 변호사 등 직무상 비밀 취급 주체에 대한 압수 시에 압수 거부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행사 주체 및 보호대상이 협소하고 행사 절차가 명시되지 않아 그 활용에 제약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영훈 변협회장 "ACP는 국민 권리"
해외 주요국들에서는 ACP를 법제화해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피의자와 변호사 등이 나눈 서면 교신 및 업무 관련 기록 등에 대한 압수 금지를 명시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ACP를 인정해 변호사가 압수 대상물에서 보호 대상물에 대한 제외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ACP의 법제화 추진에 대한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김영훈 대한변협회장은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ACP는 결국 변호사의 권리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며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한국만 ACP를 도입하지 않았다.
상당히 낙후된 것이라고 본다”며 입법을 촉구했다.

실제로 지난 국회에서는 변호사의 비밀 유지권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은 변호사법 일부 개정안이 여야를 막론하고 발의되기도 했지만, 결국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치주의에서 중요한 축 중의 하나가 변호사 제도인데, 수사기관과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ACP 도입은 어디까지나 변호사가 아니라 의뢰인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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