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사진과 똑같이 그린 그림 창작일까? 울산미술대전 논쟁
2024.07.18 23:23
수정 : 2024.07.19 09:01기사원문
#. 사진작가인 친구가 들판에 핀 꽃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뒤 나에게 와 그 꽃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과 똑같은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그림은 친구의 사진 작품을 표절한 작품일까? 아니면 나의 순수한 창작 작품일까?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올해 울산미술대전에서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된 한 서양화 작품이 울산 미술계를 뜨겁게 달궜다.
사진 등 콘텐츠를 공유하는 세계적 소셜네트워크 ‘핀터레스트’에 해당 작품과 똑같이 생긴 사진이 발견됐고, 이들 두고 표절·창작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올해로 28회째를 맞은 울산미술대전은 울산미술협회(이하 울산미협)가 주최하고 울산미술대전운영위원회가 주관하며 울산시, ㈔한국미술협회가 후원한 전국 공모전이다.
지난 5월부터 공모에 들어갔으며 접수된 작품은 한국화, 서양화, 수채화, 조각, 공예, 서각, 서예, 문인화, 민화 부문에 총 693점이다.
울산미협은 심사를 거쳐 이들 작품 중 대상 2점, 최우수 5점, 우수 8점, 특선, 입선 다수 작품 총 457점의 수상작품을 발표했다.
■ 똑같은 사진이 '핀터레스트'에
논란이 된 대표적인 작품은 서양화 부문 최우수 작품에 선정된 '비 온 뒤'라는 작품이다. 수상 작품 발표는 지난 5월 16일에 이뤄졌고 6월 12일부터 5일간 전시회를 가졌는데 이후 ‘핀터레스트’에서 그림과 똑같은 사진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핀터레스트'는 일반적으로 '핀' '핀터' 등으로 불린다. 사진 등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소셜 네트워크다. 세계의 많은 미술 작가나 일반인들도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미술계의 인스타그램'으로 불린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사진이 누구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표절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를 울산매일이 지난 7일 첫 보도했다.
이후 울산미술대전 개최 요강에 '전시 작품 내용이 순수 창작 예술품이어야 한다'라는 내용과도 맞지 않는다며 표절에 무게를 둔 지역 미술계 인사들은 이 작품의 최우수 작품상 선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일각에서는 현재도 진행 중인 미술계의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사진을 회화로 옮긴 작품의 경우 극사실주의를 말하는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인 분야다. 논란이 된 ‘비 온 뒤’라는 작품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 하이퍼리얼리즘은 논쟁 중
현역 작가가 직접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서양화 화가인 오나경 작가는 최근 울산매일에 기고한 글을 통해 “창작은 개인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타인의 영향과 영감을 받기도 하며(중략) 타인의 발상에 공감해 이미지를 차용하고 2차 창작을 하고자 하기도 한다”라며 “(그렇더라도) 창작의 결과물이 시각·개념적으로 거의 동일한 느낌을 준다면 그것은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며 타인의 아이디어, 저작물에 대한 모방이고 도용이고 표절이다”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울산미협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울산미협은 당장 결론을 내기보다는 지역 미술계에서 제시된 의견들을 살펴보고 신중한 검토를 거친 뒤 논란을 매듭지을 방침이라고 18일 밝혔다.
김봉석 울산미술협회장은 앞서 지난 8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하이퍼리얼리즘을) 회화 기법의 진화로 봐야 할지, 베끼기로 봐야 할지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문제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술계의 오래된 논쟁을 울산미협이 나서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내리기엔 부담이 크고, 또 섣불리 결과를 번복하면 이 역시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기에 고뇌가 엿보이는 말이었다.
한편, 이번 논란에서 중요하게 제기된 것 중 하나는 표절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저작권 문제다. 다만 저작권 소유와 표절 여부를 직접 연관 짓는 것에는 시각차가 존재한다. 예술작품 공모전 개최 시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