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일본 만화… 뮤지컬로 깨어난 추억 속 그 캐릭터

      2024.07.22 18:09   수정 : 2024.07.22 18:09기사원문
올여름 공연 피서를 계획한다면,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추천한다. 상반기 '일 테노레' '디어 에반 핸슨' '헤드윅'을 즐겨본 관객이라면 하반기는 '하데스 타운'으로 출발해도 좋다. 10년 넘게 사랑받은 '영웅'과 '시카고' 그리고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젠틀맨스 가이드'도 공연 중이다.

따끈따끈한 초연작도 줄줄이 개막했다. 일본만화 원작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과 '베르사유의 장미'가 국내 극장가를 강타한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그리스 신화 재해석, 소울 넘치는 '하데스타운'

극작·작곡·작사를 맡은 아나이스 미첼의 동명 앨범을 극화한 '하데스 타운'은 그리스 신화를 성공적으로 재해석한 '소울' 넘치는 작품이다. 극의 형식 또한 독특하다. 모든 등장인물과 라이브 밴드가 함께 무대에 오르고,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마치 재즈 클럽의 사회자인 듯 극을 이끈다.

'하데스 타운'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살리기 위해 지하세계로 향한 오르페우스와 하데스에게 납치돼 가을·겨울에는 지하에 사는 아내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엮었다. 현대적 재해석을 더한 이 작품은 1920~30년 미국 대공항 시기 혹독한 현실과 흑인 노예와 유럽 이주민이 공존하던 뉴올리언즈에서 생성된 재즈를 차용해 에우리디케는 가난하고 강인한 현실주의자, 오르페우스는 음악적 재능을 지닌 몽상가이자 가난한 웨이터로 재창조했다. '저승의 신' 하데스는 광산을 운영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 페르세포네는 남편의 조급한 사랑이 답답한 애주가 여신으로 거듭났다.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무대에서 다섯 주연배우와 세 '운명의 여신' 그리고 앙상블이 함께 꾸미는 무대는 그야말로 심심할 틈이 없다. 여기에 피아노·첼로·기타·드럼 등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가 배우들과 유기체처럼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로 무대를 꽉 채운다. 특히 이 작품은 노래와 음악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성스루' 뮤지컬로 뉴올리언즈 재즈·아메리카 포크·블루스 등 커튼콜 포함한 37곡의 넘버들이 공연 내내 흘러 넘친다.

지난 12일 개막일 분위기는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코로나19 기간인 2022년 국내 초연 후 이번이 두 번째 시즌인데도 배우들이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한국 최초 '여성 헤르메스' 역을 맡은 최정원은 마치 어머니처럼 넉넉한 품으로 '지옥으로 가는 길(Road To Hell)'을 선창하며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오르페우스' 박강현은 가성과 진성을 오가며 '음악의 신'의 열정과 어수룩한 남자의 순정을 표현했다. 슬픈 눈의 '에우리디케' 김환희는 들꽃처럼 강인하게 빛났고 '페르세포네' 김선영은 대체불가 개성으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하데스' 김우형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지하세계 왕의 위엄과 섹시함을 뽐냈다. 사랑의 불안과 빼앗긴 자유의 노래가 마음을 울렸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라는 메시지가 따뜻한 위안도 안겼다. 원작은 2019년 토니상 8관왕에 올랐고 2020년 그래미 어워즈 최고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남자주연상, 여자조연상을 수상했다.

■추억의 일본 만화, 무대서 재현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일본 만화 특유의 밝고 순수한 10대 감성을 뮤지컬로 만들었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과 영국 웨스트엔드 해롤드핀터 극장에서 동시 개막한 이 작품은 불운의 신동 피아니스트 소년과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녀가 만나 음악으로 교감하며 변해가는 스토리. 아이러니하게도 극중 천재 소녀, 소년의 뛰어난 연주를 실제로는 들을 수 없다. 배우들이 연주를 하다 멈추고 뮤지컬 넘버를 부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첫사랑의 아련함과 풋풋한 학원 청춘물이 지닌 밝은 에너지에 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등을 탄생시킨 프랭크 와일드혼이 전곡 작곡을 맡았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한때 소녀들에게 '오스칼 신드롬'을 일으켰던 동명 만화를 무대로 옮겼다. 남장 여자 오스칼이 아버지의 바람으로 왕실 근위대장이 되나 프랑스혁명이 발발하자 자신의 의지로 혁명 시위대 편에 서게 된다는 내용을 그렸다. 원작과 달리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와 오스칼의 우정은 다뤄지지 않고, 오스칼 집안의 하인이자 소꿉친구로 자란 앙드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드라마가 전개된다.
유럽 뮤지컬을 한국에 도입해온 EMK와 '벤허', '프랑켄슈타인'의 왕용범 연출, 이성준 작곡가가 의기투합했다. '베르사유의 장미' 원작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는 최근 첫 공연을 관람하고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의 음악이 무척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출연 배우들의 가창력이 매우 훌륭했다.
영상과 무대 디자인의 절묘한 조화가 잘 느껴지는 무대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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