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소년법원을 다녀와서 느낀 단상

      2024.07.27 09:00   수정 : 2024.07.27 19:5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스페인 소년법원

작년에 다른 나라의 소년심판 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스페인 그라나다 소년법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우선 스페인 소년법원 판사님들은 대부분 20년 내지 30년 동안 소년심판 업무만 계속해서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일반 법관으로 임용된 후 소년법원 판사가 되기 위한 특별 시험을 본 다음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나서야 소년법원 판사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법관이 다른 일반 재판 업무를 담당하다가 가정법원이나 지방법원 소년부 배치되어 길어야 2년 정도 근무하고 또다시 다른 재판 업무를 맡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마저도 작은 지방법원의 경우 소년부 판사가 형사재판장이나 민사재판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설령 가사소년전문법관이 되더라도 소년심판 업무만 3년을 초과하여 전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K-콘텐츠의 위력

또 하나 놀랐던 점은 그라나다 소년법원 판사님들 모두 김혜수가 소년부 판사로 출연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애청자였다는 점이다. 항상 스키니 청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로 출퇴근하신다는 그라나다 소년법원의 에밀리오 판사님은 “정말 김혜수가 드라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판사가 직접 수사관처럼 사건을 파헤치고 다니느냐?”고 나에게 묻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가는 식당은 물론이고 현지인들만 가는 식당에서도 BTS와 뉴진스의 노래가 흘러 나와 깜짝 놀랐고,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김치를 찾는 스페인 현지인들에 또 한 번 놀란 상태에서 위와 같은 얘기를 들으니 K-콘텐츠의 위력을 실감하는 동시에 뭔가 모를 뿌듯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사실 나는 법원 근무 당시 소년심판을 꽤 오래 한 편이다. 수원지방법원 근무하면서 1년, 수원가정법원에 근무하면서 3년 총 4년 동안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하였다. 아마 법원에 나보다 소년심판을 오래 담당했던 분은 천종호 부장판사님을 비롯하여 몇 분 안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향후 몇 회차의 칼럼은 소년심판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소년전문법관의 필요성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나라 소년심판은 일반 법관들이 순환하면서 담당하는 구조다. 가사소년전문법관이라 해도 길어야 2-3년이다. 사실 나의 경우에도 소년심판의 구조와 관계기관의 구체적 역할, 비행소년들의 특성, 처분이 가져오는 효과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거의 2년 정도가 소요되었다. 우리나라는 소년심판 제도를 이해하고 적절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경험이 쌓이자마자 다른 업무를 해야 하는 구조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소년심판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나라도 스페인처럼 소년법원을 설치하고 일반 법관 중 소년전문법관을 따로 선발하여 정년까지 소년심판 업무만을 계속 담당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년심판의 효용

소년심판 제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소년심판이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비행소년들에게 판사가 약한 처분을 내려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만 보면 일견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4년간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해 본 결과 소년심판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절대 비행소년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제도가 아니다. 소년들이 저지른 비행 중 언론에서 보도되는 대부분의 강력범죄 사건들은 결국 소년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시 검찰에서 죄질이 매우 좋지 않은 사건을 소년부로 송치하더라도 소년부 판사는 다시 이 사건을 검찰로 보낼 수 있다. 같은 유형의 범행을 저지른 공범들 중 형사재판을 받은 소년의 경우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소년재판을 받은 소년의 경우 2년간의 소년원 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형사재판에서는 벌금으로 끝날 수 있는 범행을 저지른 소년이 소년재판을 받을 경우 160시간의 사회봉사 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비행소년이 아이스크림 1개를 훔쳐 먹어서 아동복지시설에 6개월 간 입소되는 6호 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아이스크림 1개 절취했다고 6개월의 실형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부 비행소년은 소년심판을 받는 경우 형사재판을 받도록 사건을 다시 검찰로 보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년심판 폐지론보다는 개선으로

소년원에서의 6개월 생활과 교도소에서의 6개월 생활이 다르듯이 소년심판의 처분과 형사재판의 형벌은 그 목적과 효과가 전혀 다르다. 소년심판에서는 비행소년이 저지른 비행(범행)의 죄질을 살펴보는 동시에 그 소년의 가정환경이나 주변 환경도 세심하게 살핀다. 그래서 아무리 가벼운 비행을 저질러도 비행소년의 주변환경(보호력)이 취약한 경우 무거운 처분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거운 처분은 소년의 보호력을 강화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한다. 일반인들이 접하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많은 강력 소년사건들은 결국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고, 설령 촉법소년이어서 결국 소년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더라도 형사재판을 받을 때보다 결코 유리한 처분이 나오지 않는다. 소년심판을 하면서 처리한 대부분의 소년사건은 매우 경미한 경우가 많은데 조사해 보면 그 사건을 저지른 소년들의 가정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열악한 가정환경이었더라면 그 누구라도 제대로 생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소년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소년들로 하여금 형사재판을 받게 하고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 그 소년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그들은 잠깐의 형사재판을 받고, 전과자가 된 후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정말로 범죄자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인지 의문이 든다.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극소수의 촉법소년(이러한 촉법소년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는 소년부 판사와 법무부가 협의하여 다양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범죄소년의 연령을 낮추어 많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촉법소년을 범죄소년화하자는 의견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방황하는 소년들로 하여금 소년심판 절차를 통해 위탁보호위원, 상담사, 아동복지시설 관계자들, 나아가 소년부 판사의 도움을 받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이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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