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티메프 사태'..도덕적 해이와 감독 부실

      2024.08.01 07:00   수정 : 2024.08.01 07: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월급만 받아서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인 시대다. 집값은 나날이 고공행진에 외식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안 오른다. 뭐라도 좀 해야겠다 싶어 주식을 하고 있다.

주식하며 겪는 고뇌와 고통은 '이환주의 개미지옥' 칼럼으로 풀고 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질까 싶어 시작한 주식인데 '이생두망(이번 생은 두번 망하게 생겼다)' 꼴이다.

주식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손실률이 마이너스 50%인데 급전이 필요해 주식을 처분해야만 할때 '읍참마속(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다)'의 심정이 드는 것 말이다. 전세 보증금 납입, 계약금 지급 등 급전이 필요해 주식을 처분할 경우 반드시 영업일 기준 이틀 전에 팔아야 한다.
월요일에 주식을 팔면 돈은 수요일에 들어온다. 월요일에 주식을 팔았는데 화요일이 휴일이면 돈은 목요일에 들어온다.

주식을 매도하는 순간 판매 대금은 '예수금'으로 잡히지만 바로 인출은 할 수 없다. 시스템 상에서 판매된 내 주식은 바로 현금으로 들어오지 않고 한국예탁결제원의 검증을 거쳐 이틀 후에 들어온다. 과거 매도자와 매수자가 직접 만나 돈과 주식 실물을 교환하는 불편한 절차를 개선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와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최근 토스증권을 비롯 일부 증권사들은 주식을 매도하는 순간 바로 입금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틀 뒤에 받을 돈을 바로 입금해 주는 대신 일정 수수료(이자)를 내야 한다. 물론 고객 유치 차원에서 이 수수료를 공짜로 해주는 증권사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다.

개인간의 금전 거래, 기업들의 임금 체불도 마찬가지다. 만약 갚아야 하는 날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거나,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해당 기간에 맞춰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야 하는데 제때 주지 못하고 두 달 밀렸다. 해당 기업은 2달 후에 2달치의 월급의 합과 2달에 대한 이자(지연이자)까지 지급해야 한다.


'티메프'의 유독 긴 정산주기

이커머스 플랫폼은 고객과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장터다. 하지만 여기서도 고객과 판매자가 직접 만날 경우 각종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과거 '중고나라 사기'가 대표적인 예다. 고객간 직거래를 할 경우 운동화를 샀는데 벽돌이 오고, 책을 시켰는데 헌신문지가 와도 구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커머스 플랫폼이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를 사용한다. G마켓, 옥션, 네이버, 11번가 등은 에스크로 방식 정산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소비자가 돈을 입금하면 일정기간 돈을 보관했다가 구매확정 시에 판매자에게 돈을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이커머스 업체마다 소비자에게 돈을 받고, 판매자에게 입금해 주는 정산주기가 다르다. 플랫폼별 정산 주기를 보면 △G마켓 5~10일, △무신사 10~40일 △SSG 10~40일 △쿠팡 30~60일 등이다. 하지만 위메프 37~67일, 티몬도 40일에 달했다.

티메프 사태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고객이 지불한 상품 대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업이 마음대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정산주기를 길게 가져가면서 그 기간 동안 자금을 기업이 임의대로 다른 곳에 사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티메프 등 큐텐 계열 정산금이 1000억이라고 가정하고 1000억을 연이율 5%대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고 하면 약 8억3000만원의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소상공인 판매자들은 제품을 판매해도 대금을 2개월 뒤에 받게되므로 추가적인 상품 매입을 위한 돈이 없다. 그러면 이들은 이들 플랫폼과 연계된 은행에서 '선정산 대출'을 받게 된다. 판매자들이 받는 선정산 대출의 이자는 약 6%로 알려졌다. 지난해 선정산 대출을 취급하는 국내 3개 은행이 판매자에게 지불한 대출금만 1조2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상공인 판매자들은 약 738억원의 내지 않아도 되는 이자를 낸 것이다.

판매자들은 자금을 늦게 정산 받아 잃게 된 기대수익(기회비용)과 다음 판매 상품 매입을 위해 불필요한 대출을 일으켜 잃게 된 손해 '이중고'를 겪은 셈이다.

판매자들은 이 같은 '플랫폼'을 통하지 않으면 제품 판매가 어려운 만큼 울며 겨자먹기로 입점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일부 기업이 악용한 것이다. 특히 티메프가 꽤씸한 이유는 에스크로를 도입하지도 않고, 서로 다른 법인의 재무와 통장을 경영진 마음대로 일원화해 의도적으로 횡령을 했다는 의혹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혁신'을 빙자한 기업들의 배신

2016년 아마존은 세상에 없던 무인 편의점을 공개했다. 직원이 아무도 없는 매장에서 소비자가 물건을 들고 나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시스템이라는 거였다. '아마존 고'라는 이 기술은 하나의 혁신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매장에 있는 CCTV나 특정 센서 등으로 소비자의 시각 정보 등을 분석해 결제가 자동으로 처리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인건비가 싼 인도의 원격 근무자 1000명 이상이 일일이 상품 라벨을 보고 분류해야 하는 '수동 시스템'이라는 거였다. 1000건의 상품 중 약 700건이 사람이 검토해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했다. 처음 배달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혁신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배달플랫폼의 실상은 소비자가 주문을 하면 중간에서 사람이 가게에 배달 주문을 대신 넣어주는 시스템에 불과했다. 사진만 찍으면 명함을 자동으로 저장해 주는 서비스도 오류가 많아 사람이 일일이 입력해야 했다.

기자가 입사했던 2010년대 초중반만 해도 거하게 술을 먹고 집에 갈 때는 직접 전화를 해서 콜택시를 부르거나, 대리 기사를 불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터치 몇 번으로 택시를 부르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소비자도, 택시 기사도 수수료 없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카카오모빌리티가 시장을 장악하고 택시기사들은 높은 수수료를, 소비자들도 여러가지 명목의 서비스 비용으로 요금이 올라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배달 플랫폼 역시 3~4개 업체의 과점 체제가 형성돼자 수수료가 빠르게 올라갔다.


감독 당국 역할론

기업들의 이윤추구 행위는 막을 수 없다. 합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감독하는 일을 하는 곳이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같은 기관이다.

티메프 사태에 대해 금융당국은 전자상거래를 ‘본업’으로 하며 대금 정산을 ‘부수’ 업무로 해온 기업에 금융업 수준의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기가 쉽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티몬·위메프 업무협약 체결 및 사후관리 경과'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2022년 6월 티메프와 경영지도비율 준수를 위한 분기별 경영개선계획 협약을 체결했다. 감독당국 역시 티몬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방증이다. 금감원은 경영지도 개선 협약이 말 그대로 협약일 뿐이어서, 강제력 있는 감독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달이 되면 티메프 사태의 피해자는 판매자와 소비자, PG사, 신용카드사 등을 넘어 티메프의 직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월급 정산 및 퇴직금 지급 등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향후 조사와 수사 등을 통해 티메프로 들어갔을 소비자들의 제품 대금에 대한 추적과 티메프의 자금 이동 상황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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