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고 마셨는데 양잿물이었다니"...티·메프의 이유 있는 '출혈특가'
2024.08.02 09:00
수정 : 2024.08.02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격언이 등장한 시대가 언제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보통 19세기 구한 말부터 6·25 전쟁 즈음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다소 범위가 넓지만 예측되는 시기 모두 '어렵고 힘들던' 그 때라는 점은 같습니다. 너도나도 공짜를 찾는 시대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 모두 힘든 시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대금 정산이 불가능하다는 '티메프' 사태가 공식화되자 거시경제 지표가 움직이지 않겠냐는 수준의 충격이 우리 사회에 퍼져나갔습니다. 당장 밝혀진 금액만 2100억원이고, 아직 정산일이 다가오지 않은 거래건을 포함하면 피해액이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티·메프는 특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수많은 회사의 재화를 '조금 더 싼 값에'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에 가깝습니다. 이런 플랫폼에 조단위의 돈이 물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양잿물을 마실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양잿물일 수도 있다는 의심 정도는 우리가 해볼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싸면 그만?...알쏭달쏭 수익구조
현명한 소비자의 덕목은 끝없는 의심입니다. 할인을 제공하면 그 가격이 원래의 합리적인 가격이 아닐지 의심하고, 유독 싼 가격이 있다면 제품이나 서비스에 하자가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식입니다.
도대체 언제 할인을 안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벤트'가 많은 시대에, 유독 티몬과 위메프에 소비자들이 몰려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기본값이 돼버린 다른 회사들의 이벤트보다 티몬과 위메프가 더 싼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명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왜 티몬과 위메프에서만 더 싸게 팔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기 마련입니다. 다른 곳의 가격이 굉장히 불합리한 수준이 아니라면, 분명히 티몬과 위메프는 팔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답은 사실 이미 나와있습니다. 실제로 손해를 보면서 팔고 있던 것이 맞았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2010년 창사 이래로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티몬은 2022년 인수 당시에는 '완전자본잠식' 수준까지 재무상태가 나빠진 상태였습니다.
아마존이나 이베이 등 외국의 성공한 오픈마켓 플랫폼들은 자체적인 광고와 마케팅, 입점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업계 1위 쿠팡은 적자손실을 메워줄 수 있는 투자처를 찾은 곳이고요. 물론 이들 역시 '조금 더 싼 가격'의 출혈 경쟁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기업 규모를 키웠지만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서는데 성공한 플랫폼들이죠. 티몬과 위메프는 전 단계에서 출혈만을 계속하고 있던 셈입니다.
할인율이 곧 금리...소비자 모르는 '사채'
현명한 소비자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티몬과 위메프는 왜 그렇게 출혈을 감수해가면서 물건을 팔았던 것일까요.
미정산 사태가 불거지고 환불 절차가 밝혀지며 이 수수께끼 역시 어느 정도 해답을 드러냈습니다. 물건을 산 고객과 판매자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단계와 시간이 소요되고 있던 것입니다.
판매자가 부랴부랴 물품을 취소하기 전까지 소비자가 미정산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티·메프가 판매를 마친 이후에도 실제 대금이 정산이 완료되기까지 약 40일 가량이 소요됩니다. 일단 고객이 낸 돈은 티·메프가 쥐고 있는 셈이죠. 티·메프의 월별 거래 총액은 수천억원 수준으로 단순 예금 이자만으로도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목돈'입니다.
오픈마켓의 주력 상품으로 '상품권'이 떠오른 것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정산 불가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6월에도 'e쿠폰서비스' 부문은 전년에 비해 1269억원(21%) 늘어났습니다. 발행업체가 5%, 판매업체가 3%의 할인을 적용해 마진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티·메프는 통상 7~10% 할인율을 적용했거든요.
고객 입장에서는 현금을 10% 싸게 사는 횡재같은 상품이었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티·메프 입장에서 2~5% 금리로 어음을 발행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티·메프는 '할인 중개 플랫폼'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를 담보로 돈을 빌려쓰는 사채업의 형태에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당장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던 소비자나, 우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판매자 모두 모르는 새 티·메프에 돈을 빌려준 셈입니다.
결국 티·메프의 어음이 부도가 나자 피해는 고스란히 채권자의 몫이 됐습니다. 정부는 유동성 5600억원을 공급해 급한 불을 끄고 온라인 플랫폼의 불합리한 정산 구조에 법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작 어음을 돌린 티·메프만 '공짜돈'을 쓴 모양새입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