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통한 평화 : 같은 용어, 다른 생각
2024.08.06 06:00
수정 : 2024.08.06 06:00기사원문
현 정부의 외교안보를 관통하는 철학적 기조는 '힘을 통한 평화'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강력한 군사적 억제력을 구축하여 평화를 달성한다는 개념이다. '힘을 통한 평화'는 말로만 외치는 평화는 그 자체로 허상이라는 성찰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진영도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오브라이언(Robert C. O’Brien)은 지난 2024년 6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 국제 관계를 다루는 미국의 계간지, 1922년 창간)에 'The Return of Peace Through Strength'(힘을 통한 평화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트럼프 외교정책을 자세히 설명했다. 나약한 미국이 아니라 적이 두려워하는 미국으로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 힘을 신장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평화도 달성가능하다는 인식을 담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현 한국 정부의 '힘을 통한 평화'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힘을 통한 평화'를 하나씩 풀어보면 현 정부와 트럼프 진영의 생각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첫째, 평화를 누릴 대상이 다르다. 한국이 생각하는 평화의 대상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은 기여외교, 가치외교를 통해서 자유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더 많은 인류가 평화를 누리도록 한다는 인식하에 안보공조, 연합훈련 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한 것도 이러한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 트럼프 진영이 인식하는 평화의 대상은 ‘미국 쏠림' 현상이 짙다. 미국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평화의 대상을 확장할 수 있다는 ‘거래적 접근’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유럽뿐 아니라 대만도 미국의 거래 측면에서 이익이 되어야 평화지대로 가동될 수 있도록 공조하겠다는 계산이 있는 것이다.
둘째, 힘의 축적 범주가 상이하다. 한국이 생각하는 힘의 축적은 자강과 외연 모두를 포함한다. 스스로의 군사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 동맹국 및 유사입장국과의 외연 확장을 통해 축적하는 군사적·전략적·외교적 세력권도 힘의 축적에 유의미한 수준이라고 규정한다. 반면 트럼프 진영에서 생각하는 힘의 축적은 미국 일방의 압도적 힘이다. 따라서 동맹은 미국 힘의 축적에서 그다지 유용한 자산이 아니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셋째, 제도적 기능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 '힘을 통한 평화'는 현실주의 사고에 기반한다. 현실주의 사고는 힘의 축적을 통해서 안보를 지켜낼 수 있다는 사고다. 현실주의자는 이처럼 힘을 강조하지만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제도적 기능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규칙기반질서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수호가 현실주의자에게도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는 한국 정부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수호 연대에 적극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나 규칙기반 질서라는 용어 자체 사용을 꺼려한다. ‘제도’ 혹은 ‘힘’ 중 오직 ‘힘’이라는 하나의 축에만 올인하는 경향성이 강한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힘을 통한 평화' 담론이지만 다른 방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트럼프 진영 간에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서게 된다면 한국에게도 바이든 행정부 하 대미외교와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미 대선의 결과는 아직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트럼프 대세론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해리스 상승세도 만만치 않는 등 접전 양상이다. 분명한 점은 미 대선 결과가 어떻든 국익과 안보를 위해 대미외교와 한미동맹을 잘 이어가는 게 정부의 몫이란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여건조성과 사전준비가 중요할 것이다.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에도 Plan A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해리스 행정부가 들어서면 Plan A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성적 사고에서 탈피해 바이든 행정부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치밀하게 검토하여 반영하는 Plan C도 필요한 셈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