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자율구조조정이 어려운 이유

      2024.08.05 18:17   수정 : 2024.08.05 18:17기사원문
정산 지연 사태로 물의를 빚고 있는 티메프(티몬·위메프)에 대해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2일 자율구조조정신청(ARS)을 받아들였다. 회생 절차를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피해회복에 나서라는 의미다. 티메프 입장에선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자율구조조정 과정에서 투자자를 구할 수도 있고, 적법한 피해회복 절차를 거쳤다는 근거도 남길 수 있다. 향후 예상되는 법적 분쟁도 수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ARS 성공 가능성을 어둡게 보고 있다. 우선 티메프의 경우 통상적인 채무자와 채권자 간 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율구조조정에 성공한 케이스를 보자. 의류매장 '트위'를 운영하는 유통업체 티엔제이의 경우 채권자인 주요 투자자가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었다. 이 업체는 해외사업 확장 과정에서 글로벌 경기불황 등으로 해외사업 적자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협의가 수월했다. 국내사업에선 흑자를 내고 있는 데다 채권단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채권보유 규모가 큰 채권자가 10명 이하로 구성돼 있다면 채권자와 채무자 간 의견조율이 빨라진다. 이런 과정에서 통 크게 손해를 감수하는 일부 금융권의 결단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티메프는 이상적 조정절차를 기대하기 어렵다. 채권단 구성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현재 채권자는 약 11만명으로 추산된다. 채권자의 종류만 해도 여행사 등 판매업자,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 일반소비자 등으로 다양하다. 자율조정 협의를 위해선 채권자협의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협의회 구성 단계부터 크고 작은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채권자들끼리 분쟁도 발생한 상황이다. 여행사·상품권 발행업체와 일부 PG사들 사이에서다. 정산 지연 상품에 대해 PG사가 환불해야 하지만 일부 PG사들은 "이미 판매가 완료된 상품"이라며 환불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공·숙박·여행 상품 등은 이미 소비자에게 도달해 상품 구매계약이 성립됐다는 게 PG사들의 주장이다. 전례 없는 분쟁에 금융당국도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채권단이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울회생법원이 ARS 제도를 도입한 후 지난해 6월까지 22개 업체가 절차에 돌입했다. 이 중 자율조정 합의에 성공한 곳이 10곳뿐인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자율구조조정을 낙관적으로 포장하는 곳은 한 곳뿐이다. 티메프 경영진이다. 이들은 자율조정기간 신규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 등을 피해회복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검찰은 티메프의 모기업 구영배 큐텐 대표 등이 정산이 어려운 상태임을 알았음에도 지속적으로 프로모션 비용을 지출했을 것으로 의심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5일까지 이미 자택과 티메프 사무실 등 10곳 이상을 3차례 압수수색하며 정보를 모았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400억 횡령'과 '1조원대 사기'다. 이 상태에서 돈을 쓸 새 투자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법원이 설정한 자율구조조정 시한은 1개월이다. 채권자가 11만명인 상황에서 1개월 안에 이상적 피해회복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사이 소비자와 판매업체 등 소상공인의 속만 타들어갈 뿐이다. 업계에 따르면 티메프에 입점한 판매자는 약 6만곳이다. 피해회복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들이 줄도산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검찰과 금융당국 등은 경영진의 범죄 혐의를 명백히 밝혀야 하지만 이는 사실상 사후조치에 불과하다. 정부 차원에서 소상공인 피해회복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적 완충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부실한 판매대금 정산 시스템 개선도 검토해야 한다.

ks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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