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 조선 vs ‘불황늪’ 철강… 하반기 후판 기싸움 팽팽

      2024.08.06 18:30   수정 : 2024.08.06 18:55기사원문
국내 조선업계와 철강사들이 올 하반기 후판 공급가격을 놓고, 벌써부터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실적 급감으로 위기에 몰린 철강사들은 조선사들이 올 상반기 큰 폭의 이익을 기록했음에도, 중국산·일본산 수입 물량을 지렛대 삼아 '가격 후려치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조선사들은 '10년 불황에서 겨우 벗어났다'며 협상 우위 구도를 최대한 유지하겠다는 분위기다.



6일 조선·철강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사들간 올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이 최근에서야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t당 90만원 후반대이던 후판 가격을 조선사들의 요구대로 90만원 초반대로 낮추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22년 t당 120만원대였던 것에 비하면, 25% 이상 하락한 것이다. 국내 철강사 한 관계자는 "상반기분에 대해 겨우 합의를 이뤘으나, 철강사 입장에선 결코 만족스러운 가격이 아니다"고 말했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으로 주로 선박 건조에 투입되는 두꺼운 철판을 말한다.
철강사 매출에서 약 10~20%를 차지한다. 조선업계에서도 선박 원가의 약 20%를 차지한다. 양측 모두 영업비밀로 간주할 정도로, 후판가격에 예민하다. 올해 3~4월에 시작된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이 최근에서야 마무리된 것은 그 만큼 양측간 협상이 치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재 및 부대 비용 인상을 감안하면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철강업계의 입장이다. 그러나, 하반기에도 협상의 주도권은 조선사들이 쥐게 될 전망이다. 중국산과 일본산 후판 수입량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40만t에 달한다. 중국산 1급 후판은 t당 77만원 수준으로 국산과 비교해 15만~20만원 정도 낮다. 조선업계가 사용하는 후판 중 20% 정도는 중국산인 것으로 추정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중국의 내수부진으로 철강제품에 대한 덤핑이 일어나고 있다"며 "후판 가격도 낮아지면서 중국산 비중을 기존 20%에서 25% 이상으로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철강사 관계자는 "조선사들이 중국산 후판 가격을 제시하면서, 가격을 맞춰달라는 요구를 해오고 있다"면서 "과거 조선경기가 어려울 때, 철강사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후판 가격을 내린 걸 감안해 이번엔 조선사들이 상생의 파트너십을 발휘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철강경기는 불황의 터널에 갇힌 상태다. 조선·자동차 업종을 제외한 전방산업들이 고전하면서 2·4분기 영업이익이 두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일부 철강사는 고로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반기에도 업황 악화로 수익성 부진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조선사들은 원가 개선 노력으로 10년 만에 도래한 '슈퍼 사이클'(초호황) 국면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최근 철광석 가격이 내린 것도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 인하를 요구한 이유 중 하나다.

지난 7월 영국 클락슨리서치가 발표한 선가지수는 187.98로 2020년 7월(126.72)에 비해 약 50% 상승했다.
국내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선으로 수주를 확대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선가지수는 같은 기간 43.4% 증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지난 2·4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429%, 569% 폭증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실적 개선은) 불황의 골이 그 만큼 깊었다는 의미"라며 "10년간의 적자 골을 메우려면 원자재 협상에서 여유를 부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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