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레슬링 몰락’ 확인한 파리의 잔인한 이틀 … 3전 3패 2득점 36실점 충격

      2024.08.10 09:00   수정 : 2024.08.10 09:2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에게 레슬링은 상징적인 스포츠다. 그도 그럴 것이다.

대한민국 역대 1호 금메달이 레슬링에서 나왔다.

양정모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자유형 62㎏급)에서 우승해 대한민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손기정(1912~2002)이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지 40년 만이었다.
그리고 지난 1996년 애들랜타올림픽 -48kg급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54kg급에서 심권호가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레슬링 강국 대한민국는 없다. 그 현주소를 확인하는데는 단 이틀이면 충분했다. 레슬링 대표팀은 3명의 출전 선수 중 단 한 명도 1라운드를 넘어서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다크호스로 꼽히던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급 이승찬(강원체육회)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16강전 1라운드에서 쿠바의 레슬링 전설 미하인 로페스에게 0-7로 완패했다. 로페스의 결승 진출로 나선 패자부활전에서도 아민 미르자자데(이란)에게 0-9로 졌다. 남자 그레코로만형 97㎏급에 출전한 김승준(성신양회)도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16강전 1라운드에서 만난 아르투르 알렉사냔(아르메니아)에게 0-9로 패했고, 패자부활전에서 루스탐 아사칼로프(우즈베키스탄)에게 2-8로 완패하며 짐을 쌌다.

북한 문현경의 기권으로 가까스로 올림픽 출전권을 얻은 여자 자유형 62㎏급 이한빛(완주군청)도 기적을 쓰지 못했다. 9일 열린 16강전 루이자 니메슈(독일)에게 0-3으로 패하며 첫 올림픽 무대를 허무하게 끝냈다.

한국 선수 3명은 이번 대회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아울러 세 선수 합계 득점 2점, 실점 36점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냈다.



예견된 결과였다. 한때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꼽혔던 한국 레슬링은 2012년까지 회장사를 맡았던 삼성이 퇴장하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떠나자 레슬링인들은 파벌 싸움을 벌였고, 현장 경쟁력은 계속 떨어졌다.

구심점을 잃은 한국 레슬링은 휘청거렸다. 이렇다 할 유망주는 발굴하지 못했고, 한국 레슬링을 이끌던 간판선수 김현우, 류한수 등은 점점 나이를 먹었다. 한국 레슬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메달 1개 획득에 그치더니 2020 도쿄 올림픽에선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 49년 만에 '올림픽 노메달'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세계 변방에서 물러나자 한국 레슬링은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세계선수권에 2진 선수를 파견하는 등 일찌감치 올림픽 성적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한레슬링협회는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체급별 5장의 올림픽 티켓이 걸린 세계선수권대회 직후에 열리자 주력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아시안게임에 대표선발전 1위 선수를, 세계선수권에 2위 선수를 내보냈다.

결국 한국은 세계선수권대회에 걸린 올림픽 티켓을 단 한 장도 획득하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 2개를 따내는 등 최악의 성적을 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도 따지 못한 건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57년 만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한국 레슬링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김현우는 태극마크를 반납했고, 류한수도 은퇴 수순에 접어든다.
그런데 젊은 선수가 아예 없다. 이대로라면 사실상 고사 수준에 접어들 수밖에 없는 한국 레슬링이다.
파리에서의 이틀은 그것은 너무 적나라하게 확인한, 한국 레슬링에게는 아픈 이틀이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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