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그후…'행복의나라', 그 시대 담고 싶었다"(종합)
2024.08.11 07:02
수정 : 2024.08.11 07:02기사원문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오는 14일 개봉하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고(故) 이선균 분)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10.26과 12.12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000만 흥행에 성공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추창민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 '7년의 밤'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이 작품에 계속 맴돌았다"며 돌고 돌아 '행복의 나라' 연출을 맡게 된 과정에 대해 털어놨다.
-작품 맡게 된 과정은.
▶이 작품은 오래전 봤을 때 시나리오가 좋았지만 당시 소재가 지금 당장 당기지가 않아서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못 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7년의 밤'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이 작품에 계속 맴돌았다. '굳이 이 작품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좀 하고 싶더라.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시나리오가 수정이 된 후에 '그럼 한번 해보자'고 하면서 시작이 됐다.
-처음과 달리 어떤 부분이 각색이 됐나.
▶당시엔 박태주 중심이었던 시나리오였다. 일련의 사건과 가족 이야기가 많고 감성적으로 접근한 시나리오였는데, 저는 정인후라는 변호사까지 또 다른 인물로 삼각 구도를 만들었다. 그 차이가 제일 크지 않나 한다. 만약 특정 사건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으면 10.26, 12.12를 다룬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어쨌든 사건보다는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 같다. 그래서 전상두라는 특정 인물보다는 그 야만의 시대에 갖고 있던 권력자의 모습, 또 완성된 인물보다는 성장하는 시민인 정인후의 모습, 그리고 박태주와 같이 권력자에 의해 희생되는 자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코미디를 잘하는 조정석인데 어떻게 캐스팅했나.
▶위대한 변호사들이었으면 (조)정석이가 하면 안 될 것 같더라.(웃음) 세속적인 인물이고 변화돼 가는 인물로 설득하기엔 조정석만한 배우가 없더라. 처음엔 출세하고 싶고, 아버지한테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지만 세상과 맞닿게 되고 진실을 보게 되고 한 인물에 대해 설득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이 어쩌면 지금 시대를 겪어가는 젊은이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했다. 정석이는 거기에 걸맞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유재명 캐스팅 이유는.
▶유재명 씨가 꼭 필요하기도 했지만,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상두를 하겠다는 배우가 없었다. 그렇다고 역할이 힘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명도가 없는 배우를 쓸 수는 없었다. 유명 배우에게 제의를 했더니 '이건 신인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유명 배우 중에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이 역할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라고 하더라. 또 제안드린 분이 재명 씨인데, 재명 씨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뱀처럼 보였으면 좋겠다'였다. 진짜 권력자의 뒷모습은 뱀처럼 사악하고 간교하고 숨어서 뭔가 큰일을 만들면서 어떤 것도 버릴 수 있는 그런 인물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명 씨가 보여준 눈빛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한다. 200% 이상 잘 하시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한다.
-유재명은 직접 머리를 밀기까지 했는데.
▶분장부터 시작해서 헤어까지 이걸 설득하기 쉽지 않다. 주연이 아닐 경우 4개월 동안 머리를 밀면 다른 작품을 못 하지 않나. 그런데 재명 씨가 제일 먼저 '마음대로 쓰라'고 말해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깎읍시다'라고 했다. 어느 정도 머리를 밀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조금씩 밀었다. 많이 밀면 너무 희화화될 수 있어서 겁이 났다. 유재명이란 저 사람이 가진 힘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전상두가 희화화되지 않았으면 했다는 말의 의미는.
▶전 전두환이라는 캐릭터가 많이 희화화됐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이 저렇게 희화화되는 순간 저 사람이 진짜 가진 사악함도 희화화된다 생각한다. 그래서 저 사람이 그렇게 보여서는 안 된다, 되게 진실되고 진짜처럼 보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은 캐릭터가 가진 힘이 더 강했다는 인상이다.
▶저는 개인을 너무 한쪽으로만 몰아세우는 게 불만이었다. 캐릭터는 다양성을 가져야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신 단점은 '한 대 때리고 싶다'는 감상까지 가진 못했다. 그런 게 있었다면 훨씬 더 사람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을 텐데 오히려 섬세한 인간성이 있어야 훨씬 더 진짜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인후 전상두 외에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한 박태주라는 인물을 더 주목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다. 이 인물을 다룬 감독으로서 어떤 점을 주목해 줬으면 하는지.
▶'어떤 분이었다, 어떻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까진 아닌 것 같다. 시나리오를 받고 '이런 사람이 있었네'라고 자료 조사를 쭉 했을 때 자료로 나온 글로는 멋진 분이시더라. 집안은 가난했지만 서울고등학교를 나와서 공부는 아주 잘했지만,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에 육사를 선택했고, 톱 클래스로 졸업을 했지만, 최전방과 월남전부터 시작해서 권력의 요직에 있으면서도 전 재산 400만 원밖에 안 되는 그런 삶을 살았던 분이다. 그분 돌아가신 나이가 39세인데, 안타깝더라. 마지막에 한 어떤 행위 때문에 이 사람 전체가 호도되는 건 안 된다 생각했고, 이 행위로 이 사람이 좋다 나쁘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과거 이런 삶을 살아왔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나 했다. 그걸 사실적으로 녹여내려 했다.
-박태주 역에 이선균을 캐스팅한 이유는.
▶이선균 배우에게 다른 이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기존에 해왔던 역할을 쓰지 않고 다르게 쓰는 게 연출자로서는 재미가 있다. 다른 영화에서도 항상 그렇게 접근해 왔다. 선균 씨를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까 이 사람은 이걸 했을 때 훨씬 더 빛날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사람들이 한 번도 못 본 모습이니까.
-이선균은 어떤 배우였나.
▶이선균 배우는 지내보면 개구쟁이 같은 사람이었다. 강직한 군인과 약간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균 씨가 기존에 해왔던 버럭하는 연기보다는 표현을 적게 하자고 했다. 슬픔도 기쁨도 무표정하고 덤덤하게 표현했던 것 같다. 인터넷에 박흥주 대령 사진이 돌아다니는데 선균 씨가 그분 얼굴을 보고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분장도 비슷하게,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게 했다. 그분의 외모적인 걸 분장으로 표현하면서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숙지한 것 같다. 굉장히 멋지게 해낸 것 같다.
-이선균 배우의 유작인데, 개봉 전까지 편집에 있어 고민한 부분도 있나.
▶편집은 거의 로크(Lock)이 걸렸기 때문에 손을 많이 대진 않았다. 믹싱룸에서 마지막 사운드를 정리할 때 영화 엔딩에 '잘있게'라는 대사가 있다. 박태주가 정인후한테 마지막으로 '잘있게'라고 하는 엔딩 대사인데 이걸 빼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이게 너무 의도적으로 보이나 고민하다가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넣자는 의견이 커서 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스크린으로 보니까 '크게 할 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용감하게 크게 해버릴 걸 했다.
-정인후가 전상두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골프장 장면의 의미는.
▶어떤 분은 좋게 보시는 분도 계시지만, 어떤 분들은 '뭐야'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앞부분은 다큐처럼 가다가 갑자기 웬 판타지냐고 생각도 하시는데 저는 솔직히 그 판타지가 좋았다. 한 변호사가 독재자를 찾아가서 일갈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저항하는 누군가가 지금도 있고 그 사람이 어떤 사회 부조리와 불편,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또 전두환이 골프를 좋아했고, 권력을 갖고 난 뒤에 미군 골프장에서 혼자 그렇게 골프를 많이 쳤다고 하더라. 또 권력자는 훨씬 치밀하고 계획적인 데다 쉽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기에 개인적인 장소에 있을 때 그 욕망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전두환에게는 그 장소가 골프장이 아닌가 했다. 그런 공간인 골프장에서 맞닥뜨렸을 때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모습이 꼭 보였으면 했다. 어쩌면 호불호가 있겠지만 표현하고 싶었다.
-12월에 촬영한 이유는.
▶그 장면은 뜨거웠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김이 나고 헉헉대고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 발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그렇게 뜨거웠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의도가 된 것 같다. 어쨌든 사건이 벌어진 건 12.12이기도 하기 때문에, 추울 수밖에 없었다.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또한 흥행했는데. 두 작품의 흥행에 따른 부담은 없나.
▶있다.(웃음) 그 작품은 그 작품이고 저희 작품은 저희 작품이긴 하지만 부럽다. (웃음)
-또 조정석 배우의 주연작인 '파일럿'이 최근 개봉해 흥행 중인데, '행복의 나라'도 함께 시너지를 냈으면 하는지.
▶당연하다. 저는 영화 산업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한국 영화보다 극장이 잘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석이가 잘 되는 것도 좋고 한국 영화가 잘 되는 건 더더욱 좋고 그리고 그게 잘 되면 저희 영화도 도움을 받고 더 좋을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