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월 속 현실화하는 북핵 위협과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2024.08.12 06:00
수정 : 2024.08.16 18:34기사원문
북러간 동맹 복원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북러간 밀착이 또 다른 군사적 제한요인으로 작용할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급랭 됐던 한중간 관계개선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일고 있는 데다 북중간 관계 악화 징후를 보이고 있어 어느 때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역학관계가 복잡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중국과 북한이 북러 밀착을 둘러싸고 반목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양국의 정책 기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양측의 사상자는 50만명이 넘는다고 추산되며, 우크라이나가 최소한의 핵억제력을 보유했다면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논리가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지구상 최초로 법제화한 이른바 '핵무력 정책법'은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하며 한국은 심각한 딜레마에 처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
■中, 북한은 한반도 레버리지...대미 전략 카드
지난달 27일 열린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 행사에 북한 주재 각국 외교관들을 초대했지만, 주북 중국대사 왕야쥔만 불참하는 등 북중 관계 사이에는 곳곳에서 예전과는 다른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북중 교역이 감소하고, 2018년 5월 북중 정상회담 후 중국 다롄 외곽 휴양지 방추이다오 해변을 산책하며 친교를 쌓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기념물인 '김정은-시진핑 발자국 동판'이 제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은 또 최근 북한 당국에 체류 허가 기한이 조만간 만료되는 10만명가량의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전원 귀국시키라고 통보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의 90%가량은 중국에 집중돼 있으며, 북한 외화벌이의 핵심이자 '김정은 체제' 유지 기반이다.
북중과의 갈등 구조는 앞서 지난 1월에도 감지됐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초 일본 지진 때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각하'란 표현을 쓰며 위로 서한을 보냈지만, 같은달 22일 발생한 중국의 대규모 지진과 산사태에 대해서는 위로 서한을 보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성윤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북한은 관계가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주기적으로 겪는다"며 "중국은 역사적으로 북한 지도자가 중국에서 멀어져 러시아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일 때 불쾌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에 가장 큰 장기적·전략적 경쟁자인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북한 카드는 필수적인 전략적 가치가 있다"면서 나아가 "중국이 올해 안에 김정은을 중국에 초청해 투자와 원조를 약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입장에선 북러 밀착으로 인해 중국의 턱밑 한반도 주변에 한미일의 전력이 집중되고 특히 미국의 전략무기 동원의 상시화 등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꼭 필요하단 얘기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도 본지에 중국의 북한 노동자 송환 통보에도 중국 외교부는 "중국과 북한은 산과 물이 서로 연결된 가까운 이웃이며 줄곧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북중우호를 강조했다고 짚었다. 반 센터장은 중국이 북한과 소원해진 것이 현실이지만 이를 부인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면서 중국을 불편하게 하면 손해를 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발신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북한에 대해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으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큰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北 핵무장 자신감...중·러와 '등거리 전략' 구사 관측
중국의 이 같은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북한은 전략적 자율성과 등거리 전략으로 맞서는 구도가 역력하다.
국제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행태를 보면 핵무장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넘은 '등거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반 센터장은 1961년에는 김일성이 소련을 찾아 조약을 체결했지만, 이번 2024년 북러간 '포괄적 전략적동반자관계 조약' 체결은 푸틴이 북한을 찾아 조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김정은 자신이 선대와는 위상이 다르다는 전략적 자율성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최근 외교적 행보는 신냉전 구도를 역이용해 자신이 원할 때 중국과 다시 밀착할 수 있다는 신호이며,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간 외교적 균형을 이루는 모양새가 아니라 외교 시소게임을 통해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태라고 설명했다.
반 센터장은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담판은 외교 뿐 아니라 군사,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는 점에서 외교라는 플랫폼을 전략 구사를 위한 최적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의 '등거리 전략'이라는 설명이 적실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우러전쟁 양측 사상자 추산 50만명 넘어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양측에서 사이버전 전개와 전쟁 그 자체의 속성상 상대에 대한 기만과 선전전을 겸하고 있는 탓에 인명 피해와 관련한 정확한 통계 집계는 어렵다.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우러전쟁으로 양측 사상자는 2023년 말 기준 50만명을 넘어섰다고 추산했다. 이는 한국 군 전체 규모를 상회하는 규모다. 러시아 군인이 31만5000명, 우크라이나에서는 17~19만명 정도에 우크라이나 민간인도 수만명에 달하며 피란민은 416만명, 실종자는 2만3000명에 이른다.
러시아는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 전에 유지하고 있던 지상군 병력의 약 87%를 잃었으며 전차의 약 3분의 2인 2200대와 보병전투차 및 병력수송장갑차 4400대 또한 파괴된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다.
우크라이나의 병력 손실도 막대하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에 따른 국방력 손실을 국가 비밀로 취급해 정확한 수치를 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시민 단체는 약 3만명의 군인이 전사한 것으로 최근 주장했고, 뉴욕 타임즈는 이미 지난 8월에 전사자 수가 7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민간인 피해도 누적되고 있으며 유엔 인권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UNHCR)는 지난해 11월, 민간인 사망자의 수가 만명을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한 직후 핵탄두 약 1700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 그러나 1994년 미국, 영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약속하는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Budapest Memorandum on Security Assurances)를 채택하면서 핵무기를 포기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러전쟁 발발의 원인과 경과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선제 핵공격을 가해온 상대방에게 핵으로 강력한 보복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단 몇기의 제2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 즉 최소한의 핵억제력을 보유했다면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란 추리와 논리를 제기하고 있다.
■北 지구상 최초 핵무기 사용 법제화 "언제든 필요하면 사용"
북한은 핵개발 완성 전까지 핵억제만 한다고 나왔다. 남북대화에선 "우리가 설마 동족을 향해서 핵을 겨누겠느냐"고까지 말했다. 이후 북한은 현재 핵무력정책법 같은 것을 통해서 선제 핵사용을 명문화하고 남쪽을 향해서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하겠다고 여러번 반복해서 공언하고 나섰다.
2022년 북한이 제정한 핵무력 정책법 제3조 1항에는 핵무력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위에 복종한다. 2항에는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에 모든 결정권을 갖는다고 규정돼 있다. 제5조 2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야합하여 우리를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그 비핵국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위협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는 미국의 핵우산과 한미동맹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에선 남조선을 향해 언제든 핵을 사용하겠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제6조에는 △핵을 포함해 대량살상무기공격 감행 또는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핵, 비핵공격감행 또는 임박 판단 △국가 중요전략적 대상들에 치명적 군사공격 감행 또는 임박 판단 △유사시 전쟁 확대·장기화를 막고 전쟁 주도권 장악을 위해 작전상 불가피한 경우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로 핵대응이 불가피한 경우로 규정돼 있다.
결국 한마디로 김정은 한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구상에 이 같은 핵사용 여건을 열거하고 법제화한 나라는 북한뿐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위험성을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핵 대응, 한국의 딜레마..방치해선 안 돼
1941년 맨하탄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이자 핵물리학자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전쟁 승리의 영웅이 됐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만든 핵무기 위력을 보고 이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하는 비탄에 빠져든다. 강력한 핵군축을 주장한 그는 수소폭탄을 만들려는 트루먼 대통령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미소의 일촉즉발에 처한 위험한 상황을 설파하면서 비핵화협상을 주장했다.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좌성향 인사로 몰려 청문회 조사를 받고 1951년 모든 공직을 박탈당하고 모든 명예를 잃게 된다.
미국 정부는 2022년 오펜하이머 사후 공직을 박탈했던 징계를 취소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했지만 그는 결국 비핵론자로 1967년 63세로 쓸쓸하게 사망했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은 이같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의 생전 고뇌는 좁은 병속에 두 마리의 독침 전갈이 서로를 겨누고 있는 위험한 상태를 벗어나자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지금 대한민국은 오펜하이머가 그토록 절망스럽게 생각했던 딜레마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한반도에서 남북은 좁은 병속에 독침을 가진 전갈 앞에 우리는 무침 곤충으로 남아 있는 셈"이라며 "우리는 우리가 처한 딜레마를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