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표 웃음 담았지만… 그 시대 권력층의 야만성 그대로 살려냈죠"
2024.08.12 18:11
수정 : 2024.08.12 20:15기사원문
"10·26이나 12·12 그 사건 자체를 다루기보다 그 시대가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000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 사진)이 다시 한번 실존 사건·인물에 영화적 상상을 더한 팩션 시대극을 내놓았다. 조정석과 고(故) 이선균, 유재명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 '행복의 나라'다.
■10·26사건과 12·12 군사반란 사이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과 12·12 군사반란, 그 사이에 진행됐던 군사재판을 소재로 한다. 승소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가 10·26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 분)의 변호를 맡으면서 시작된다. 추창민 감독은 "당시 권력층의 야만성을 대변하는 인물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상두라면 박태주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희생자다. 정인후는 시민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비교했다.
조정석이 연기한 가상의 인물 정인후는 박태주와 전상두 사이에서 관객들을 시대의 풍경 속으로 이끄는 주역이다. 코미디와 정극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조정석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의 이야기에 소소한 웃음을 안기며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서울의 봄'의 황정민과 다른 온도로 전두환을 표현한 유재명의 연기도 관전 포인트다. 추창민 감독은 "권력자의 뒷모습은 뱀처럼 사악하고 간교하길 바랐다"며 "분장도 너무 희화화가 돼 인물의 사악함이 희석되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대중에게 낯선 박태주 캐릭터는 실존 인물과 닮게 접근했다. 청빈하고 강직한 군인으로 평가받는 박흥주 대령은 김재규 등과 함께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봄 처형됐다.
추창민 감독은 "자료상으론 매우 멋진 분이셨다"며 "권력의 요직에 있으면서도 전세 400만원에 슬라브 집에 살다가 겨우 40살에 돌아가셨는데 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선균 배우가 실존 인물과 유사하게 분장하면서 연기 톤을 잡았다. 슬픔도 기쁨도 덤덤하게 표현했다. 이선균의 새로운 모습이 나왔다"며 만족해했다.
■"故 이선균, '잘 있게' 마지막 인사"
추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은 군사재판 장면이다. "후일 교재 자료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역사의 기록과 같이 구현했다"고 말했다. 전상두와 정인후가 부딪히는 후반부 골프 장면에 대해선 "감독의 판타지가 투영된 장면"이라며 "전두환이 권력을 가진 뒤로 미군 골프장서 많이 쳤다고 하더라. 출입이 금지된 그곳에서 전상두가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면, 정인후를 통해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선균의 유작인데 편집 과정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 추창민 감독은 "'잘 있게'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대사를 넣는 게 맞나 고민했다"고 돌이켰다. "의도적으로 보일까봐 소리를 줄였는데, 그냥 원래대로 크게 할 걸 그랬어요. 실제론 개구쟁이 같은 사람이죠. 촬영 끝나면 윷놀이를 하자고 해서 함께 했는데, 제겐 과정이 특히나 좋았던 영화입니다."
한편, 14일 개봉하는 영화 '행복의 나라'는 12일 오후 2시 현재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예매율 20%로 1위에 올랐다. 신작 '에이리언: 로물루스'(13%), '빅토리'(12.4%), '파일럿'(10%)을 따돌린 수치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