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동상, 울산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2024.08.14 13:02   수정 : 2024.08.14 13:0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복회 총사령관을 지낸 고헌 ‘박상진 의사’ 동상이 울산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박상진 의사 동상은 지난 1982년 울산청년회의소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울산 옥교동 제이시(JC)동산에 건립했다.

이후 태화강 강변도로 확장 공사로 지난 1998년 북정공원으로 옮겼으나 북정공원마저 울산시립미술관 부지로 편입돼 또다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에 울산시는 향후 울산 중구 북정동 재개발 구역에 들어서는 역사문화공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지난 2017년 임시 보관에 들어갔다. 하지만 재개발 공사가 지연되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7년간 창고에 보관되어 왔다.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울산시는 박 의사의 동상을 울산항일독립운동기념탑 있는 울산 달동문화공원에 세우기로 최종 결정하고 15일 오전 9시 20분 동상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제막식에는 김두겸 울산시장, 김종섭 울산시의회 의장 직무대리, 국회의원 등을 비롯해 박상진 의사 증손 박정훈, 박필훈씨가 참석한다.

시 관계자는 “박상진 의사 동상 이전을 계기로 독립운동 정신과 보훈 문화가 더욱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고헌 박상진 의사는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한 울산 출신의 독립투사로 광복회 총사령을 역임했다.

1910년 양정의숙을 졸업한 박 의사는 졸업 후 법관 시험에 합격했지만 “독립운동가를 내 손으로 단죄할 수 없다”라며 임용을 거부하고 만주로 떠났다.

박 의사는 중국 천진과 난징, 상하이 등을 여행하면서 쑨원 등을 만나 독립운동 의지를 다졌다. 이후 무장독립운동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만주 신흥강습소를 설치하는 등 국내외에서 독립전쟁 기지를 구축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광복회를 결성해 본격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해외에서 무기를 구입해 일본인 고관이나 한국인 친일 인물들을 처단하는 것을 목표로 치열하게 항쟁했다. 또 독립전쟁 군자금 마련을 위해 1915년 경북 우편마차 습격, 1916년 운산금광 현금 수송 마차를 습격하기도 했다.

운산금광 현금 수송마차 사건으로 광복회 부사령이 일제에 체포되자 김좌진을 대신 임명했다.
김좌진은 1920년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다.

박 의사는 1916년 대구권총사건 때 잠시 붙잡혔다가 풀려났지만 이어진 친일반민족자를 처단한 사건으로 광복회 비밀 활동이 드러나면서 결국 1918년 다시 체포됐다.
박 의사는 재판에서 변호사 선임 등을 거부하고 1921년 8월 13일 대구형무소에서 3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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