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스로 만든 과거사의 감옥

      2024.08.19 18:05   수정 : 2024.08.20 08:22기사원문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1987년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 처음 들어간 부분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이라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9차 개헌 당시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문구를 새로 넣은 것은 '역사적 정통성의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한다('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의미' 논문). 장 교수는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은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변경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탄생 자체를 임시정부로 소급시키는 것보다는 임시정부의 정신을 대한민국이 계승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고, 그런 의미에서 1919년 건국 주장은 옳지 않다"고 했다.

'정신 계승'이라는 관점에서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라는 주장은 무리임을 알 수 있다. 임시정부가 '임의 단체'라거나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탄생한 임시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구심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포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게 하는 등불이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의 위상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승만과 김구 등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해석·재해석하는 과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제 에서 벗어난 지 80여년이 된 지금도 갈등은 오히려 확산하고 있는 듯하다. '엄밀한 역사적 사실'과 '합리적 해석'이 아니라 진영 논리에 따라 왜곡된 시각이 여전한 탓이다. 둘로 쪼개진 광복절 기념식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골이 더 깊어진 현실을 상징한다. 일본 정부의 사과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두고 "친일 매국 정권" 운운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이영일 전 의원은 '건국사 재인식'(동문선)에서 "(대한민국) 건국사 왜곡은 북한 심리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1948년 이래 집요하게 되풀이해 온 김일성 패거리들의 건국사 왜곡 담론을 그대로 믿고 옮기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소련의 위성정권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은 빼놓고 "이승만이 통일을 바라는 전 민족의 염원을 외면하고 미국의 힘을 끌어들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운 것이 민족분열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이승만을 격하해야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사 출신, 중앙정보부 근무, 민정당 사무총장, 국정원장 등을 역임한 이종찬 광복회장이 결과적으로 좌파의 선동에 따라 국론분열에 앞장선 것은 아이러니다. 광복회는 이른바 뉴라이트 판별기준이라는 것도 제시했다. 임시정부 및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입장, 일제하 우리 국민의 국적 등 9가지가 그것이다. 기준 자체도 문제지만 자신들의 잣대로 뉴라이트 딱지를 붙이는 것은 마녀사냥이나 다름없다. 국민 누구도 광복회에 그런 권한을 부여한 바 없다. 합리적 해석을 벗어난 과거사에 대한 집착은 자신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젊은이들이다. 파리올림픽에서 일본 선수에게 지고도 축하를 건네며 실력 차이를 쿨하게 인정한 신유빈 선수.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직도 한일전, 친일파 운운하는 미숙한 어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사 선동 외에 내놓을 미래 비전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에게 일본과 일본인은 외국과 외국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젊은 세대는 철 지난 과거사 선동에 발목 잡히지 않고 선진국 국민으로서 세계를 자유로이 누벼야 한다. 문제는 광복 후 80여년이 된 지금도 '친일파' 운운하며 독립운동을 하는(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한 것이지만 그들이 끼치는 해악은 국론 분열에 그치지 않고 국가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지각 독립운동가들은 알아야 한다. 스스로 만든 감옥의 열쇠는 자신에게 있음을. 아니 그대로 걸어 나가면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감옥을 만드는 것은 열등감의 반영이라고 한 아들러의 말이다.
일본 논문을 통째로 베끼는 사람이 친일파 선동에 앞장서는 걸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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