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국회 논의, 파고 넘을 수 있나-3회
2024.08.22 16:57
수정 : 2024.08.22 16:5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2대 국회가 개원한지 3개월이 다 돼가지만 연금개혁 논의는 단 한발짝도 진척이 없다. 개혁 방안에 대한 토론은 커녕 연금개혁을 논의할 구체적인 방식조차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사실상 21대 국회보다 후퇴한 수준의 공방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보험료율 13% 인상'이라는 잠정 합의점을 도출했지만 정부가 사실상 논의를 22대로 미루면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개혁 방식에 대한 입장 차는 여전하다. 정부여당은 모수개혁만으로는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으니 구조개혁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소득 보장에 방점을 찍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모두 올리는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연금개혁 논의를 위해 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하자고 촉구하는 반면 민주당은 정부 안이 나오면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를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연금특위? 복지위? 핵심은 '구조개혁' 여부
연금특위는 비상설 기구로 그간 여야 합의를 통해 구성·운영돼왔다. 21대 국회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인 지난 2022년 10월 연금특위를 구성해 지난 5월까지 운영했었다.
특위에서 관련 논의를 한 배경에는 해결 방안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만 손을 댄다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하면 되지만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등 구조를 손 보기 위해선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와의 협력이 필요해 여러 상임위가 동원돼야 한다. 다시 말해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만 바꾸는 모수개혁뿐 아니라 제도의 틀을 바꾸는 구조개혁을 병행하기 위해 여야가 특위를 꾸린 것이다.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부가 그간 늘 강조해왔던 원칙이기도 하다.
이에 국민의힘이 다시금 연금개혁 논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연금개혁특위 구성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은 22대 개원과 동시에 자체적으로 당내 특위를 만들어 야당을 향해 논의를 압박하기도 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연금특위 위원장은 지난 21일 원내지도부에 특위 활동을 보고한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3개 공적연금 전체를 묶어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며 "21대 국회에선 1년마다 본회의에서 연금특위 활동 기한을 계속 연장했는데, 22대 국회에선 상설특위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은 우선 정부안부터 가져오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21대 국회에서의 연금개혁이 무산된 데 있다. 당시 연금특위에서 여야는 여러차례의 회의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45%'까지 입장 차를 좁혔지만 결국 무산됐다. 민주당은 소득대체율 45%,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3%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44%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냈지만 결국 국민의힘이 모수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반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조급하게 하기보다 22대 국회에 넘겨서 좀 더 충실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발언한 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민주당은 지난 연금특위가 마련한 모수개혁안을 정부가 사실상 무산시킨 상황에서 특위를 다시 운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정부가 9월초 개혁안을 발표하겠다고 하자 관련 안을 특위 대신 복지위에서 논의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파이낸셜뉴스와 통화에서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내놓지 않고 국회에 안을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특위를 만들어 논의를 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며 "하지만 정부가 개혁안을 내놓는다면 소관 상임위인 복지위가 심사하면 될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은 연금개혁 방향과 논의 방식에 대한 공식 입장은 정부 안이 나와야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논의 기구를 각각 연금특위와 복지위에서 하자고 주장하는 기저에는 자당이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연금특위는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은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 반면, 복지위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데다 위원 수도 야당이 더 많다. 여당 입장에선 절대적인 수에 밀리지 않기 위해 연금특위를 구성해야 하는 한편 야당은 국회 의석수 배분에 따라 야당이 키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與 재정안정론 vs 野 소득보장론
논의 기구를 정하더라도 갈길은 멀다. 정부여당은 개혁 목적의 방점을 기금의 재정 안정에 두고 있는 반면 야당은 노후 소득 보장을 중요시한다. 국민의힘 연금특위 소속 안상훈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소득대체율 44%·보험료율 13%안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며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미래 세대가 그만큼 자기 부담이 늘어난다. 연금개혁은 지속 가능성이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9월 초 내놓겠다는 '뒷북' 연금개혁안에는 국가 책임 강화방안과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반드시 담겨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대별로 차등화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담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주당에선 "보험료율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논의는 정부 안이 공식 발표돼야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당 모두 정부 개혁안이 예고된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야 모두 자체적인 안을 내기보다는 정부 안과 상대 당의 입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국회 안에서의 연금개혁 논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토론보다는 서로의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