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으로 입 막고 샤워기 물 맞으며 버텼어요"…부천 호텔 화재 속 목숨 건진 생존자들
2024.08.23 16:36
수정 : 2024.08.23 18:32기사원문
이날 A씨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지난 밤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속에서 버틴 끝에 소방대원으로부터 구조됐던 현장을 증언했다. 사망자들이 안치된 빈소에서도 황망한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병원 실습·수술받으러 왔다 참변 겪을 뻔"
이날 A씨 어머니 B씨는 "지난 22일 오후 7시 40분에 불이 났다고 연락이 오자마자 호텔과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연락해서 구조를 요청하고 곧바로 춘천에서 출발했다"며 "너무 무서웠는데 전화로 구조됐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간호대에 재학 중인 A씨는 부천의 한 병원으로 실습을 왔다가 화재에 휩싸여 변을 당할 뻔했다. A씨는 불이 난 810호와 같은 층에 있는 806호에 머물고 있었다. 이 호텔은 4층이 없는 건물로 이들 호수는 7층에 있다.
A씨는 "친구들은 건너편 호텔에 묵고 저 혼자 여기 묵게 됐다"며 "의식을 잃었다가 구급차에서 산소를 마시고 정신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A씨는 갑작스럽게 번진 화재로 객실에 두고 온 노트북 등을 찾기 위해 유실물 신고를 하기 위해 가족들과 다시 현장을 찾았다.
B씨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아이처럼 대처하면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인근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들도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카자흐스탄인 C씨는 "6층에서 묵고 있다가 탈출하라는 안내를 받고 급하게 나왔다"며 "여행가방을 두고 와서 찾으러 왔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용지물이 된 '에어매트'
사망자 대부분은 탈출하다가 숨진 것으로 확인돼 생존자들의 안타까움을 더욱 자아냈다. 특히 소방당국은 사고 접수 4분 만에 현장에 출동해 5분 만에 에어매트를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는 점이 논란이다.
부천소방서는 10층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살 수 있는 구조용품이라고 했지만 에어매트로 뛰어 내린 남녀 2명 모두 숨졌다. 먼저 뛰어내린 여성이 매트 가장자리로 떨어지면서 매트가 뒤집혔고 곧바로 남성이 뛰어내려 두 명 모두 구조에 실패했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나머지 사망자 5명 중 상당수는 계단, 복도 등에서 발견돼 대피 도중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건물 구조가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호텔 복도가 좁고 객실 창문이 작아 유독가스가 건물 안에 가득 찼고 열이 축적돼 대피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추정이다. 지난 2003년 준공된 건물이어서 스프링클러도 설치돼있지 않았다.
경찰 등으로 꾸려진 수사본부는 이날 합동 화재감식을 진행했다.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전기안전공사 등 총 33명으로 구성된 합동감식팀은 오전 11시부터 1시간 30분여간 합동 감식을 벌였다.
오석봉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화재 장소로 확인된 8층에 대해 화재 발생 이후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정확한 원인 규명에 집중했다"며 "향후 현장 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등 수사를 종합해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황망한 죽음에 이어진 '오열'
부천 호텔 화재 희생자들은 순천향병원 등 인근 병원 6곳으로 분산 이송됐다.
4명의 사망자가 안치된 순천향대 부천병원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날 정오쯤 마스크를 쓴 채 병원을 찾은 20대 여성은 핏기 없는 표정이었다. "어떤 심정이시냐"는 질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안치실로 들어간 다른 사망자 유족은 "아이고 어떡해"를 연신 외쳤다.
경기 부천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호텔 화재 사망자 김모씨의 어머니는 딸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를 휴대전화로 듣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듯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김씨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지난 22일 부천 호텔을 찾았다가 객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함께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빈소에 속속 도착한 다른 유족들도 김씨의 황망한 죽음을 믿을 수 없는지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