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더 내라? 반발 클것… 자동안정화 장치도 시기상조"
2024.08.25 19:04
수정 : 2024.08.25 19:04기사원문
국민연금의 '세대별 보험료 인상 차등'을 두고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해 반발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40~50대가 보험료를 많이 내는 구조가 되면, 자녀 양육과 노후 준비로 지출이 가장 큰 시기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25일 파이낸셜뉴스는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신승룡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 등 전문가 4인과 만나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인 국민연금 개혁안에는 '세대별 보험료 인상 차등'과 '자동 재정 안정화 장치'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나이와 상관없이 보험료율이 9%로 동일한데, 정부 개혁안은 이를 세대별로 다르게 적용하겠단 것이다.
김연명 교수는 "세대별 보험료 차등 적용이 불가능한 정책은 아니지만, 40~50대 먼저 9%에서 가파르게 보험료율을 올린다면 감당이 가능한가"라며 "자녀도 키워야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이중 부담 문제가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신승룡 KDI 부연구위원은 "이번 정부안처럼 최종 보험료율 수준은 고정하고 인상 속도를 차등 적용하면 세대 간 형평성은 지켜지기 어렵다"라며 "가령 최종 보험료율이 15%라고 할 때, 언젠가는 18세가 돼 노동시장에 진입하자마자 15%의 보험료율을 계속 내게 되는 세대가 등장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이번 정부안은 부당한 정책으로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소득대체율이 지금보다 낮아져, 받는 연금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오건호 위원장은 "현재 미래 재정불균형이 심한 국민연금에서 자동안정화 장치를 탑재하면 기계적으로 고강도 개혁이 도출되게 된다"며 "높은 보험료율 인상 혹은 급격한 급여 하락 등을 동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은 교수는 "지금도 소득대체율이 낮은데, 보험료를 올리고 자동 안정화 장치까지 도입하면 소득대체율을 더욱 깎는다"며 "국가는 하나도 책임지는 것 없이 국민연금에 대한 부담은 늘리고 혜택은 축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주요 질의응답.
─현재 언급된 국민연금 개혁안에 아쉬운 점은.
▲정세은=정부의 명확한 정부안 확정이 필요하다. 정부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모호한 구상을 제시한 뒤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개혁방안 도출이 어려울 것이다.
▲김연명=지난번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들은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택했다. 보험료도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올리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게 국민 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이번 내용에는 그런 내용이 쏙 빠졌다. 1년 반가량을 국민 여론을 파악해 나름 접점을 찾은 건데 이를 무시하고, 재정 안정화 쪽으로 가려 하니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 고갈에만 너무 초점에 맞춰져 있다.
▲오건호=지금까지 모수개혁안들은 10년 미만의 기금소진연도 연장에 그쳐, 신규가입자 및 청년들에게 중장기 비전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이에 2085년 전후까지 기금을 유지하는 재정안정안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구체적 재정안정 시간표(로드맵)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토론을 벌여야 한다.
▲신승룡=낮은 합계출산율에 따른 인구구조 고령화에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하는 내용들로 안이 구성돼 있어 안타깝다. 국민연금은 잘 설계되면 강제저축을 통해 국민의 더 나은 노후를 보장해 주는 좋은 제도이지만, 지금처럼 잘못 설계돼 있으면 국민연금은 필요성에 의해 존재한다기보다는 처치하기 곤란해진 폰지 채무이다.
─세대별 보험료 차등 적용 실현이 가능할지. 문제점은.
▲오건호=공적연금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방안이나 한국 국민연금의 특수한 환경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한 방안이다. 다만, 중장년 중에서도 저임금 노동자, 자영업자의 보험료 부담이 크다.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을 확대 강화하고, 도시지역 가입자에게는 농어민에 준하여 국가가 보험료를 대략 절반 지원해야 한다.
▲신승룡=더 어린 나이에 목돈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청년층의 보험료 부담을 장년층보다는 줄이자는 의견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세대 간 형평성에 맞게 실현하고자 한다면 연령별 인상 속도를 차등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 보험료율 수준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 취지에 부합한다. 가령 20-30대의 최종 보험료율을 13%로 하고 40-50대의 최종 보험료율을 더 높은 17%로 하는 정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세은=만일 소득대체율 인상과 보험료율 인상을 내놓고, 보험료율 차등 방안을 논의한다면 논의해 볼 만하지만, 그것이 아니므로 출발부터 틀렸다. 지금의 50대는 빨리 올리고 20대, 30대는 천천히 올리자는 것이라면, 마치 20~30대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10대가 국민연금 낼 때는 이미 오른 보험료를 낼 것이어서 정작 미래세대인 10대는 덜 내는 것도 아니다.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는 일본, 스웨덴, 독일 등 해외에서 도입했다. 우리나라에도 현실적으로 적용이 가능할까.
▲김연명=말도 안 된다.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한 나라들은 보험료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고, 연금액도 높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연금 안정화 장치는 연금액을 깎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금액이 낮은 게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65세 이상 월평균 연금액이 60만원이 안 되는데 어떻게 더 깎겠나.
▲정세은=일본, 스웨덴, 독일 등은 이미 공적연금이 어느 정도 성숙된 상태에 도달한 후에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0%, 일본은 20%다. 보험료율은 차등이든 아니든 속도만 다를 뿐 결국 올라가고, 미래 세대는 올라간 보험료를 처음부터 납부해야 한다. 여기에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해서 소득대체율을 더욱 깎는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민연금을 없애자는 여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신승룡=자동 안정화 장치를 탑재하는 순간부터 소득대체율은 지금보다 필연적으로 더 낮아진다. 정부의 5차 재정계산 결과에 의하면, 기금을 영구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는 필요 보험료율은 최소 20.8%이다. 이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국민연금에 자동 안정화 장치가 있는 상태에서 보험료율이 20.8%보다 낮거나 부족분을 세금으로 충당하지 못하면 소득대체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이나 독일은 한국보다 출산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적절한 사례가 아니다. 연금 개혁 전선의 절반 이상은 소득보장파이며 이들은 지금보다도 소득대체율을 높이려 하는데, 이들의 의견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연금개혁안에 반드시 포함됐으면 하는 내용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 할까.
▲오건호=보험료율 인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가장 보험료 부담이 큰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현재 사용자 가입자는 기업이 절반, 농어민은 대략 국가가 절반을 지원한다. 오직 도시지역 가입자만 본인이 전액 부담하고 있다. 앞으로 도시지역 가입자에게도 농어민에 준해 국가가 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향후 보험료율 인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신승룡=정부는 현재 합계출산율과 인구구조 고령화를 고려해,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완전적립식 연금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기대수익비가 1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연금 상식이다. 현재 수익비가 1을 넘고 있다면 그것은 곧 후세대 누군가에게는 수익비 1 미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 기대수익비 1이 주어진 소득대체율에 대해 보험료율을 가장 낮추는 방법, 다시 말해 효율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정세은=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을 존중하는 개혁방안을 내야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본다. 지난번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들이 선택했던 것은 더 내고 더 받자, 재원마련은 보험료 인상 이외에 국고투입까지 포함해서 큰 틀에서 다시 짜자 등이었다.
▲김연명=무엇보다 연금을 만든 목적을 생각해봐야 한다. 연금은 노후에 빈곤하지 말고 최소한 품위를 지키며 살기 위해 만든 것인데, 목적은 사라지고 재정이 목적이 됐다.
imne@fnnews.com 홍예지 이보미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