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탄호이저' 속 베누스
2024.08.26 17:31
수정 : 2024.08.26 17:31기사원문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는 중세 독일에 실존했던 음유시인 탄호이저와 독일에 내려오던 전설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에피소드와 역사를 품고 있는 음악적 걸작이다. 이번 글에선 여신 베누스(비너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베누스는 고대 로마신화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모성, 아름다운 여성성의 상징이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매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탄호이저를 자신의 마법동굴, 베누스베르크로 유혹해 쾌락과 무한한 사랑을 제공한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장식적임과 동시에 강렬한 베누스의 매력을 전달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1861년 파리 초연 때 발생했다. 당시 베누스 역을 맡은 가수에게 등장 장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주문했는데,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에 바그너는 베누스를 우아하고 고요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여러 번의 수정과 연습을 토대로 관객들에게 오히려 신비로운 베누스를 보여주게 됐다.
탄호이저는 베누스와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분노를 사게 되고 용서를 구하고자 로마로 순례길을 떠난다. 용서를 받지 못한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에게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오랜 시간 사랑해온 정숙한 여인, 엘리자베트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게 된다. 결국 신성한 사랑을 선택하지만 바그너 본인은 베누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실제로 바그너는 작곡 과정에서 자신의 영감이 베누스의 무한한 사랑과 열정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누스는 이처럼 엘리자베트와 반대되는 쾌락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탄호이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일부 연출가들은 베누스를 단순한 유혹자가 아닌, 여성의 자율성과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예술과 사랑, 인간의 열망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낸다. 이런 현대적인 시도는 관객들에게 오페라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2025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2027년 '니벨룽의 반지'로 이어지는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시리즈는 '탄호이저'(10월 17~20일)로 그 첫 막을 올린다. 이번 '탄호이저'에선 어떤 베누스를 만날 수 있을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셨으면 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