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소변·모발검사법 개발… 韓 마약수사 획기적 발전

      2024.08.27 18:01   수정 : 2024.08.27 18:01기사원문

"한국 독성학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R&D)에 한평생 매진해왔다." 정희선 성균관대학교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약학박사)는 독성학 분야에 40년 넘게 종사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같이 표현했다. 정 교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초대 원장을 지녔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독성학의 권위자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이 약물중독에 대한 수사에서 사용하는 소변검사법을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1980년대 중반 이를 한국 실정에 맞게 직접 개발했다. 국과수가 자신들이 진행한 감식 결과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을 수 있도록 '국제표준화기구(ISO)17025'를 2000년대 중반 획득하는 것을 진두지휘했다.
내용상 혁신뿐만 아니라 형식상 혁신도 이뤄냈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국제법과학회와 국제법독성학회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국제학술단체 회장직을 수행하며 한국 독성학의 위상을 높였다.

정 교수가 40년 넘게 매진해 온 독성학이란 학문은 독물 전반을 연구하는 것이다. 독물이 지닌 물리적·화학적 성질을 파고들거나 검출방법, 중독현상, 치료방법, 예방방법 등을 탐구한다. 정 교수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파이낸셜뉴스빌딩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여자로서 국과수 원장에 오르고 아시아인으로서 국제학술단체의 회장을 맡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지금까지는 독성학이 한국에서 하나의 학문분과로 자리매김하는 데 힘써왔다면 이제는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독성학이란 하나의 학문분과로서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현재 검찰이나 경찰이 쓰는 소변검사와 국과수 등이 수행하는 모발검사를 만드셨다. 이들 약물 검사법을 만든 이유는.

▲이전에는 마약류 투약 의심자를 경찰이 잡아도 몸에서 근거를 즉각 찾아낼 수 없어 골칫거리였다. 그러던 중 미국으로 출장을 갔는데, 그곳에서는 마약류를 투약했는지 안 했는지를 소변으로 검사했다. 그래서 1985년에 소변검사를 개발하게 됐다. 혈액검사는 오히려 검출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소변검사는 투약자가 마약을 했으면 바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선 다음 단계로 바로 수사를 진척시킬 수 있다. 모발검사는 소변검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993년에 개발했다. 소변검사는 3~4일 전에 투약한 것을 확인할 수 있어도 오래전에 마약류를 투약한 사람은 색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들 기술을 개발하는 데 2~3년이 걸렸다. 혹자는 외국의 검사기술을 그대로 들여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마다 유통되는 마약류가 다르다 보니 타국 기술을 수입하기는 어렵다. 극소량의 마약을 이용해 여러 차례 동물 테스트를 거쳤다. 개발에 성공한 후 경찰이 서울 이태원에서 마약사범들을 잡아들였다. 그때 소변검사를 시행한 이후 엄청나게 바빠졌다.

―한국의 마약류 투약 현황과 미국의 마약류 투약 현황이 다른가.

▲그렇다. 미국의 주류 마약류는 헤로인과 코카인이지만, 한국의 주류 마약류는 필로폰이다. 이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당하면서 태평양전쟁이란 전쟁의 화마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제국은 생산현장에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전장에서 무모함을 끌어올리기 위해 각성효과를 가진 필로폰을 노동자와 군인에게 제공했다. 이 같은 역사로 인해 한국의 주류 마약류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필로폰이다.

―현재 한국의 독성학 수준을 세계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되나.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과수는 소변검사와 모발검사를 통해서 최대 0.02ng/㎎(모발 1㎎당 1억분의 2㎎)의 마약류까지 검출할 수 있다. 국제규격 수영장(길이 50m·폭 25m·깊이 2m 이상)에 떨어진 물질 한 방울을 찾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또 수십 또는 수백 종류에 달하는 신종 마약류로 검출할 역량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 시선에서 봐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의 독성학이 세계적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는 데는 많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어떤 노력이 있었나.

▲1970~1990년대에는 일본 독성학계로부터 노하우를 많이 전수받았다. 앞서 말했듯 마약류 투약패턴이 한국과 일본이 아주 비슷하고, 이론을 중심으로 노하우를 축적한 미국과 달리 개별 상황에 따라 진행된 실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축적한 일본은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이 따라 하기 좋은 모델이었다. 그래서 일본 경찰청의 '과학경찰연구소'와 교류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께 한국이 고도성장기를 겪으면서 나라가 풍요로워졌고, 질량분석기 등 기초적인 장비를 마련했다. 점차 우리 스스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역량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질량분석기가 없던 시절에는 시약의 색깔을 맨눈으로 파악해 약물의 종류 등을 추정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열악한 시기였다.

―한국 독성학의 국제화에 큰 노력을 했다. 왜 이렇게까지 국제화에 주목했나.

▲영국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에서 2000년대 초반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면서 국제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어떠한 학문이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부혁신도 필요하지만 외부교류를 통한 긍정적인 자극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는 한국 독성학계의 수준도 어느 정도 올라와 있었을 때다. 하지만 이 같은 노하우를 세계 각국과 소통하기에 아주 부족했다. 언어적 장벽은 물론 국제규격에 맞는 행정절차 등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국에서의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국과수 법과학부장을 할 때 국과수가 ISO 17025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ISO 17025를 획득하려면 단순히 실험 과정의 엄밀성뿐만 아니라 행정절차의 보완성, 시료운송 과정에서의 정확성 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관심을 두고 계신 연구 분야나 미래 연구계획은.

▲휴대용 마약류 진단키트인 '필스크린'을 상용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 독성학이 한층 더 다가가기를 희망한다.
또 한국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충남대학교에서 6년, 성균관대학교에서 4년 총 10년을 대학교 교원으로 살아왔다.
국과수에서 32년간 봉직하며 터득한 정보·지식을 후배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이 내 위치에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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