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최초 ‘오빠’ 가수 남진..금수저로 태어나 이토록 드라마틱 인생
2024.08.29 06:00
수정 : 2024.08.29 08:4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오는 9월 4일 가수 남진의 콘서트 영화 ‘오빠, 남진'이 개봉하는 가운데, 남진의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가 눈길을 끈다.
‘오빠, 남진’은 남진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팬 헌정 영화다. 남진의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 대중음악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그의 인생을 담았다.
남진은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해 ‘가슴 아프게’로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다. 1971년~1973년 3년 연속 가수왕에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1967년부터 약 10년간 70여편의 작품에 주연 배우로 활약했고 1969년 제12회 부일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닐 세다카, 엘비스 프레슬리, 레이 찰스 등 평소 팝가수를 좋아했던 남다른 음악적 감각을 지닌 남진은 장르의 한계를 넘나들며 세련된 음악을 추구했고 그 시절 트렌드 세터로 국내 최초 팬덤을 형성해 4만 명이 넘는 소녀팬들을 거느렸다.
드라마틱한 인생...나훈아와 라이벌 관계 형성, 1980년대 죽을 고비도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유복했다. 1950-60년대 목포 최고의 부잣집으로 통했는데 전라도에 승용차가 단 두 대 있던 시절, 승용차와 요트까지 가지고 있던 부잣집 4남 6녀 중 셋째 아들이었다. 아버지 김문옥은 목포일보 발행인을 지낸 거부로서 제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집안의 기대가 컸던 탓에 가수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도움으로 데뷔했다. 평소 배우 지망생이던 남진은 약 2년을 틈틈이 음악학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았고 1965년에 '서울 플레이보이'를 발표하면서 팝 가수로 데뷔했다. 데뷔 당시 여러 팝 장르의 노래들을 불렀지만 히트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그의 트로트곡 ‘울려고 내가 왔나’가 처음으로 히트하자 일찌감치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 1967년에 히트곡메이커였던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 아프게’를 부르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박상호 감독의 자전적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처음 출연하면서부터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한창 활동 중인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해병대에 입대한 남진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나가 가장 위험한 최전방에 투입되어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3년 만에 돌아온 남진이 마주한 사람은 가요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나훈아. 남진과 나훈아의 강력한 라이벌 관계는 방송국뿐만 아니라 팬들까지 과열되어 신경전을 펼쳤다. 불꽃 튀는 라이벌전이 이어질 때 남진을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준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전 국민을 흥부자로 만든 국민가요 ‘님과 함께’다.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나훈아 피습 사건 당시엔 남진이 배후로 지목되며 특수부대에 가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남진은 이와 관련해 tvN 스토리 ‘지금, 이 순간’에 출연해 “사건 일주일 전 범인이 자신을 찾아왔었다”며 “사건 이후 남진의 본가를 찾아와 집에 불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흥미롭게도 남진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을 때 데뷔 전 가수 지망생이었던 나훈아와 마주쳤던 순간과 남진, 나훈아 공동 주연 영화 ‘기러기 남매’를 촬영하며 출연 비중과 포스터 이미지를 정확히 반반씩 나누는 등 첫 만남부터 남달랐던 에피소드도 들려줬었다.
1980년대 정치적 외압으로 활동을 못하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유흥업소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이때 조직폭력배와의 갈등이 극에 달하던 중, 기습 습격을 당해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도 맞았다.
한편 남진은 앞서 “우리 팬들도 10대에서 60~80대가 됐다. 함께하는 우리 팬들에게 ‘이렇게 괜찮은 모습으로 사라져간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그런 노래를 남기고 싶다”고 개봉 소감을 밝혔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