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단약은 불가능… 처음부터 마약류 손대지 말아야"

      2024.09.04 18:23   수정 : 2024.09.04 18:23기사원문

"마약류를 한 번이라도 투약한 사람에게 완벽한 단약은 불가능합니다." 지난달 29일 경기 고양시에서 만난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이야기다. 양 과장은 마약류 중독증을 연구하는 의사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여러 저술활동을 통해 마약류 중독증과 관련해서는 전문가임을 입증했다. 또 국무조정실이 주도해 수립하고 있는 '마약류 기본계획'에 정책 자문도 하고 있다.


전문가 입장에서 양 과장이 제시한 마약류 중독증 해법은 결국 처음부터 마약류에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약류 중독증 치료를 받는 이들이 10년 안에 다시 마약류를 투약할 가능성이 높다"며 "마약류의 유혹에 다시금 빠지지 않도록 평생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마약류 중독 연구 이유는 자기성찰

양 과장이 마약류 중독증에 대해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성찰이라고 답했다. 양 과장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말기 암 환자나 요양병원에 입원한 치매환자를 진료하면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며 "삶의 마지막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기에 부득이하게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약류 오남용 등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하는 데 있어서 실수하는 것은 없는지 뒤돌아보게 됐고 마약류 중독증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경험 때문에 치료를 목적으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아 사용하는 것과 불법적 경로로 마약류를 구매해 투약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게 양 과장의 생각이다.

양 과장은 "의료용 마약류와 불법 마약류를 모두 마약류로 뭉뚱그려서 부르다 보니 약과 불법약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 같다"며 "의료용 마약류도 의약품 중 하나다.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의료용으로 마약류를 처방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세상에는 병으로 인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수준의 통증과 평생 싸우며 살아가는 환자들이 있다"며 "대표적인 예가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다"라고 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외상 후 특정부위에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통증을 의미한다. 골절, 화상 등 큰 외상은 물론 발목염좌처럼 작은 부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양 과장은 현행 마약류 분류체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의료용 마약류와 비의료용 마약류를 분리해서 다른 용어를 붙이자는 것.

현행 마약류 분류체계는 마약과 대마, 향정신성의약품(향정)으로 나뉜다. 여기서 향정이 '의약품'으로 불려 사람들이 불법 마약류도 '의약품'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식약처에 의해 지정된 향정은 300여개에 이르지만, 의료용 마약류로 지정된 향정은 49개로 한정돼 있다. 의료용과 비의료용이 구분되지 않다 보니 구조적으로 오남용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례로 언급된 것이 필로폰이다. 태평양전쟁 등이 있었던 시기에는 마약류인 필로폰이 군인이나 노동자의 피로해소제 또는 각성제로 사용됐다. 당시를 기준으로 필로폰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의약품으로 여겨졌다. 반면 현재는 필로폰의 심각한 부작용이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더 이상 필로폰을 의약품으로 여기지 않고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지만 향정으로 분류돼 있다.

양 과장은 "의료용 마약류를 마약류에 포함시켜 부르는 분류체계는 1930~1940년대 정해졌다. 약 100년 전의 분류체계"라고 했다.

■마약류 중독증, 치료·재활이 '중요'

의료용 마약류는 현실적 필요성이 존재하지만 사용에 있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양 과장은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오남용으로 마약류 중독에 빠질 경우 완벽한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양 과장은 "마약류 중독증 치료는 어디까지나 몸 안의 마약류 성분 농도를 낮추는 것"이라며 "일시적으로 단약을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시련이 찾아오면 마약류가 생각나기 마련이다. 마약류 중독증 치료는 평생에 걸쳐 끝없는 인내가 있어야 하는 '프로젝트'와 같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마약류 중독이 사회적 질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약류 중독 관련 치료·재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과장은 "마약류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와도 같다"며 "마약류 중독자들이 중독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구제해 마약류 중독의 일차적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초기 마약류 중독자의 경우 정상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한다. 그때문에 주변인들이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쉽사리 마약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마약류 중독 중기에 이르면 육체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사람이 무너져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된다. 돈을 구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가진 마약류를 되팔다 보니 마약류가 전염된다는 설명이다.

이어 양 과장은 국내 마약류 사범에 대한 치료·재활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마약류 투약사범은 8489명인데, 이 중 치료보호와 치료감호, 치료조건 기소유예 등 사법 당국에 의해 마약류 중독증 치료에 적극적으로 유도된 사람은 전체의 5.3%인 453명에 불과하다.

양 과장은 이에 대해 마약류 사범을 바라보는 사법 당국의 시선이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확대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마약류 사범에 있어 치료의 적기는 검거되는 시점"이라며 "검거되고 재판으로 형이 확정될 때까지 약 1년 반에서 2년이 소요된다. 이 기간에 마약류 사범들은 마약류 중독증을 치료받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게 되는 격"이라고 봤다.


양 과장은 "마약류를 투약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그에 합당한 죄를 받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이들 역시 사회구성원 중 한 명이고 언젠가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 만큼 '숨통'은 터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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