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투자와 미술

      2024.09.08 18:40   수정 : 2024.09.08 19:14기사원문
조각투자는 말 그대로 특정 투자대상에 대한 투자금액을 '조각 내서' 투자자를 모집한 뒤 투자액만큼 지분을 인정하는 투자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소액으로는 불가능한 고가의 자산투자를 이른바 '개미'들도 투자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조각투자란 명칭 자체는 최근에야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유사한 형태의 투자방식은 (조각투자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1960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되어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리츠(REITs)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조각투자는 음원에 대한 투자 등 예술의 몇몇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데, 그중 미술작품에 대한 것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사실 회화작품만 해도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도 있고, 수십만원 정도의 작품도 있다. 후자와 같은 소액은 작품이 마음에 들기만 한다면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많겠지만 최소 수억원에 이르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일반인들로서는 구매를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때 조각투자를 활용하면 이러한 작품을 부분적이나마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도대체 미술작품에 대한 구매행위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근본적 질문을 피할 수가 없다. 미술품 구매는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그 작품을 감상하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다. 즉 소유와 감상에 있어 완전히 배타적인 권리를 갖기 위함이다. 그런데 조각투자의 대상이 되는 미술품은 조각투자를 주관하는 회사에 존재할 수밖에 없어 소유권의 일부와 감상권의 일부만 갖게 된다. 그렇다면 소유와는 별개로 감상에 관한 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화랑의 전시작품을 '공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다 보니 미술품 조각투자는 예술행위에 대한 가치 인정보다 투자의 의미가 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반면 좋은 예술작품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 투자대상도 되는 것이므로 어느 쪽에 중점을 둘 일은 아니라는 반론 역시 같이 존재하는데 양측이 다 일리가 있다 하겠다.

이러한 논의의 결말이 어떠하든 미술품 조각투자가 투자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틀림없는데, 이 점에 있어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대두된다. 우선 이는 금융투자이기 때문에 금융투자업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금융업이 규제대상이 되는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미술품에 대한 조각투자 역시 거기서 예외가 아니다. 다시 말해 가치평가에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보유한 투자회사와 일반 투자자의 거래란 문제는 바로 이러한 비대칭성의 전형으로서 여타 금융투자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투자방식이 활성화되려면 소유하고 있는 지분을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는 유통시장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금융당국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유통시장 질서 교란을 막기 위해 유통을 불허하고 있다. 이를 포함한 여러 문제들 때문에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 확대는 주춤해지고 있다.

미술도 미술가 입장에서는 엄연히 생업이며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은 가격도 그만큼 높아져야 한다. 그래서 이른바 대가의 작품이 비싼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조각투자가 주목을 받는 것인데, 이 방식이 단순히 고가의 미술품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신진작가 등단에 도움이 될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유망한 신인작가는 주로 유명 화랑의 기획에 의해 발굴되고 등단을 한다.
이 기능을 조각투자회사가 맡을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장래성 있는 신인의 작품을 구매하고 이의 조각투자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투자저변 확대와 신진작가 등단 기회 확대를 도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제도적 준비(금융 등)는 일정 부분 정부의 몫이 될 것이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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