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초의 아시아 독재자 후지모리, 향년 86세 사망
2024.09.12 09:54
수정 : 2024.09.12 13: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아시아계 최초로 남미 대통령에 취임해 최초의 아시아계 남미 독재자로 불렸던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향년 86세에 사망했다.
미국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후지모리의 장녀이자 페루 우파 정자 민중권력당(FP)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게이코 후지모리는 1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에 글을 올렸다. 게이코는 X에 “아버지가 오랜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면서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함께 기도해달라”고 적었다.
1938년에 페루에서 태어난 후지모리는 일본에서 농업 이민으로 페루에 건너간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농업 전문가였던 그는 리마국립농업대학 총장을 지냈다.
후지모리는 정치와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지만 1989년에 신생정당 ‘캄비오(개혁)90’을 조직했다. 이어 1990년 대선에서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꺾고 당선됐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부패로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페루 국민은 정치권 출신인 아닌 후지모리를 지지했다.
후지모리는 취임 초반부터 민영화와 부유층 증세를 포함하여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노력했고 일본계라는 특성을 활용해 일본 정부에게서 거액을 빌려왔다. 그는 사회기반시설 개선 및 사회 취약계층 지원을 통해 그동안 백인 정복자 출신의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토착 인디오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후지모리는 개혁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어 냈으며 1996년 반(反)정부 게릴라의 페루주재 일본 대사관 인질극을 해결하는 등 게릴라 소탕에도 큰 업적을 세웠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독재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92년에 의회를 해산하고 사법부를 입맛대로 바꿨으며 연임을 위한 개헌까지 감행했다. 후지모리는 비밀 정치범 수용소를 만들어 인권을 탄압했고 2000년 4월 3연임에 성공했다.
후지모리 정권은 2000년 9월에 야당 의원 매수 스캔들이 터지면서 무너졌다. 이후 현지에서는 후지모리가 반대파 암살 및 마약 밀매 등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페루 대통령이었지만 여전히 일본 국적을 유지해 이중국적자였던 그는 사태가 커지자 2000년 11월에 사임을 발표하고 일본으로 도주했다. 페루 의회는 사임을 거부하고 후지모리를 해임했다.
일본에 머물던 후지모리는 2005년 알레한드로 톨레도 당시 페루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자 다시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칠레를 통한 귀국을 시도했다. 그는 칠레에서 페루 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되어 가택 연금되었고 갇힌 상황에서도 2007년 일본 참의원(상원) 비례대표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9년 페루로 송환된 그는 이듬해 인권 탄압 등의 혐의로 25년형을 선고 받아 투옥되었지만 2017년 건강 악화로 사면 판결을 받았다. 후지모리는 정치권에서 사면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면서 지난해에 겨우 풀려났다.
페루에 드리운 후지모리의 그림자는 그의 수감 생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했다. 특히 낙후 지역에서는 후지모리 집권 당시 경제 발전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었다. 2016년 대선에서는 게이코가 FP 후보로 출마해 1차 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결선투표에서 낙선했다.
후지모리는 노년에도 권력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올해 6월에 딸의 FP에 입당 신고서를 냈다. 게이코는 지난 7월 X에 2026년 페루 대선을 언급하며 “아버지가 대선 후보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