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오감도’, 90년 만에 뜻 풀렸다
2024.09.12 18:01
수정 : 2024.09.12 18:14기사원문
'오감도 시제4호'는 천재 시인 이상의 오감도 연작시 중 한 편으로, 텍스트가 아닌 뒤집어진 숫자판으로 구성된 난해한 작품이다.
12일 GIST에 따르면 GIST 기초교육학부 이태균·임혁준 3학년생은 이 시에서 뒤집힌 숫자와 가로나 세로 읽기를 했을 때 '·'에 의해 단절되는 수열, '진단 0·1' 등 다양한 단서를 배치해 숫자판을 원기둥과 도넛 형태로 말도록 유도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입체구조에서 나선형으로 수열을 읽어보면 좌우가 뒤바뀌고 단절돼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던 수열이 정상적인 형태로 읽힌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진단하려는 목적으로 원기둥 내부를 투시하기 위해 수열과 '·'가 나선형 궤적을 그리며 닫힌 공간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미적분학의 '스토크스 정리'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스토크스 정리는 내부의 상태를 경계에서의 정보만으로 진단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자기학의 핵심 원리다. 따라서 시의 숫자판이 이러한 과학적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연구진은 '오감도 시제4호'에서 '의사 이상'이 MRI와 같은 비침습적 방식으로 사회 내부를 들여다본다고 해석했다. 이를 통해 '오감도 시제4호'가 환자(세상)의 병을 직접 치료하지는 않지만, 환자(세상)의 병을 진단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문학, 시이며 보이지 않는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것이 시인의 책무임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를 지도한 이수정 교수는 "이상문학과 과학 수업을 통해 논문이 발표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라며 "모두 훌륭한 연구였지만 이번에는 졸업생이나 4학년 학생이 아닌 학사과정 3학년 학생들이 이처럼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완성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올해는 '오감도'가 발표된 지 90주년을 맞아 이번 연구가 더욱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